유형장군묘(柳珩將軍墓)는 경기도기념물 제50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산698번지이다.
임진왜란(1592~1598) 때 크게 활약한 유형(1566~1615) 장군을 모신 유택이다. 유형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천일(金千鎰 : 1537~1593)의 휘하에 들어가 강화에서 활약하였다. 선조(宣祖) 27년(1594) 무과에 급제, 선조의 친유(親諭)에 감격하여 충성을 다해 나라에 은혜를 갚겠다는 ‘진충보국(盡忠報國)’ 네 자를 등에 새겼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이순신(李舜臣 : 1545~1598)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수군(水軍)을 재건하였고, 남해 앞바다의 전투에서는 명나라 제독 진린(陳璘)과 이순신을 곤경에서 구하였다. 노량해전(1598)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한 이순신을 대신하여 전투를 지휘하여 부산진첨절제사(釜山鎭僉節制使)로 발탁되었다. 이후 선조 35년(1602)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가 되었다. 그는 용병(用兵)에 능하고 특히, 통제영(統制營)의 기계 설비와 회령 · 경성의 축성 등 적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 시설의 확립에 주력하였다.
봉분은 사성(沙城)으로 둘러싸였으며, 봉분 우측에 묘비가 있고 봉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갖추어졌다. 상석 전방 좌우에는 문인석이 있다. 신도비(神道碑)는 묘소 아래 길 옆에 있는데, 원래의 비문은 이정구(李廷龜 : 1564~1635)가 글을 짓고 김현성(金玄成 : 1542~1621)이 글을 쓰고, 김상용(金尙容 : 1561~1637)이 전액(篆額)을 썼다. 그러나 현재의 비는 이정구가 찬(撰)한 것을 정학교(丁學敎 : 1832~1914)가 글을 쓰고, 이남식(李南軾)이 전액하여 고종(高宗) 11년(1874)에 다시 건립한 것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고양군지』
『고양시의 역사와 문화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