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중흥사지(北漢山重興寺址) 경기도기념물 제136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259번지이다.
북한산 노적봉(露積峰) 아래에 있었던 사찰로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말기에 고승 보우(普愚 : 1301~1382)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 절이 대규모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은 임진왜란(1592~1598), 병자호란(1636~1637)의 양란을 겪고 난 후 도성의 방어를 위해 외곽에 대대적인 축성을 하여 북한산성을 완성한 숙종(肅宗) 39년(1713) 이후다. 축성 당시에는 30여 칸 정도의 소규모 사찰이었으나 성이 완성된 뒤 136칸의 대찰(大刹)로 증축이 이루어졌다.
성내에는 성을 지키기 위한 승군(僧軍)이 주둔하였는데 중흥사는 승군이 주둔하였던 북한산성 안의 11개 사찰을 관장하는 대규모의 사찰이 되었다. 왕실에서도 8도의 사찰에 명을 내려 1년에 6차례 교대로 의승(義僧)을 뽑아 올리게 하여 11개 사찰에 주둔시켰다. 승군의 정원은 360명으로 11개 사찰에는 각각 수승(首僧) 1인과 승장(僧將) 1인을 두었으며 이들을 총지휘하는 본부로 승영(僧營)을 설치하고 승대장(僧大將) 1인을 임명하여 팔도도총섭(八道道摠攝)을 겸임 하게 하였다. 중흥사는 승대장이 머물렀던 북한산성의 승영이었다. 그리고 이들 승병의 주둔에 필요한 물품과 군기물을 저장하기 위한 승창(僧倉)을 이 절을 비롯한 여러 사찰에 두었다.
승영 당시에는 대응전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누각인 만세루(萬歲樓)와 나한전(羅漢殿)을 두었고 동쪽에는 산신당(山神堂)이 있었다고 하며 대웅전 안에는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1915년에 홍수로 무너진 뒤 중건되지 못하여 지금은 옛터에 주춧돌과 축대만 남아 있다.
(자료출처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성과 왕국-북한산성이 전하는 26가지 한국사 이야기』
『(고양시)문화재대관』
『(지도로 보는)아름다운 경기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