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MEDIA OBJECT
문화유산
| 지정구분 | 도지정유산 |
|---|---|
| 종목/번호 | 도 유형문화유산 |
| 명칭(한자) | 四忠書院 四大臣 肖像畵 |
| 유형 |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
| 지정일 | 2024-11-29 |
|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 6(상갈동) 경기도박물관 |
| 시대 | 조선시대 |
사충서원 사대신 초상화는 18세기 초 조선 정계의 핵심 인물이었던 노론 사대신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를 그린 4점의 전신 초상화이다. 이들은 경종 대의 왕위 계승 문제와 관련된 신임옥사(1721~1722) 과정에서 소론에 의해 역모로 몰려 처참하게 희생되었으나, 영조 즉위 후인 1725년에 관작이 회복되고 복권되었다. 이에 따라 1726년 이들을 배향하기 위해 노량진에 사충서원이 건립되었으며, 당시 영조는 종묘 공사 후 남은 목재를 하사할 만큼 큰 관심을 보였다. 해당 초상화들은 서원이 완공된 1726년경 위패와 함께 봉안하기 위해 일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충서원 사대신 초상화의 제작자는 당시 ‘국수(國手)’라 칭송받던 최고의 어진화사 진재해(秦再奚)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진재해는 숙종 어진 제작을 주도하며 김창집 등 노론 대신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특히 사대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목호룡의 초상화 제작 요청을 단호히 거절할 만큼 절조를 지킨 인물이다.
4점의 사충서원 사대신 초상화는 모두 분홍색 시복(時服)을 입고 표범 가죽이 깔린 교의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18세기 전반의 정교한 필법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특히 얼굴 표현에서 콧날의 선을 선명하고 굵게 처리하여 입체감을 극대화하고, 수염 한 올부터 의복의 주름, 화문석의 세밀한 질감까지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점은 당대 최고의 초상화 수준을 보여준다.
사충서원은 1727년 훼철과 1756년 복설, 그리고 1927년 용산 보광동 이건과 1968년 하남 상산곡동으로의 재이건이라는 300여 년의 풍파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초상화들은 후손과 후학들에 의해 유실되지 않고 온전히 전승되었으며, 이는 조선 후기 정치사와 서원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자산이다. 동일한 정치적 사건으로 희생된 인물들의 초상화를 일괄 제작하여 한 장소에서 보존해 온 사례는 한국 역사상 극히 드물며, 성리학적 대의명분을 위해 죽음을 불사한 사대부들의 신념을 생생하게 상징한다.
현재 사충서원 사대신 초상화는 2023년 10월 사충서원에서 경기도박물관으로 기증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사충서원 사대신 초상화는 18세기 전반 노·소론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여 제작되었으며 전 작품들이 분실되지 않고 온전하게 전해진다. 이 초상화들은 조선 후기 당쟁사를 반영한 시대성과 역사성 그리고 초상화로서의 예술성 등을 포함하였으므로 미술사학적 가치가 매우 크다.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누리집>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누리집(여기)
사충서원 사대신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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