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MEDIA OBJECT
문화유산
| 지정구분 | 도지정유산 |
|---|---|
| 종목/번호 | 도 유형문화유산 |
| 명칭(한자) | 義王 淸溪寺 木造菩薩坐像 |
| 유형 |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보살상 |
| 지정일 | 2024-09-09 |
| 소재지 | 경기도 의왕시 청*** |
| 시대 | 조선시대 |
의왕 청계사 목조보살좌상은 극락보전에 봉안된 아미타삼존불의 좌협시 보살상으로, 정방형에 가까운 넓은 얼굴과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지녔으며, 머리에는 나뭇잎과 화염으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해당 유물의 상호와 보관 형태는 17세기 현진(玄眞)이 수화승으로 조성한 <진주 청곡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의 좌협시보살상(이하 청곡사 보살상), <창녕 관룡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대좌>의 석가여래상(이하 관룡사 석가여래상)과 매우 유사하다.
정방형의 상체는 높이 124cm의 중형 보살상으로 약간의 괴량감(塊量感)이 느껴짐과 동시에 안정감이 드는 체구이다. 양손은 별도로 삽입되어 있으며 오른손은 어깨 쪽으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고 무릎 위에 놓인 왼손 손바닥에 정병(淨甁)이 세워져 있다. 무릎 사이의 옷 주름과 오른발 끝을 덮은 대의 자락 표현 또한 현진 유파의 특징이다. 착의법은 승각기와 부견의(覆肩衣) 위에 대의를 걸친 이중 착의법이다. 어깨를 덮은 옷자락이 복부까지 길게 늘어져 있으며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온 자락이 안쪽으로 접혀 들어간 모습은 청곡사 보살상, <청도 적천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중 아미타불의 복식 표현과 유사하다.
오른쪽 어깨 위에 걸쳐진 대의 자락은 목 부분에서 반전되었고, 4개의 세로 주름의 끝단은 물결 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왼쪽 어깨 측면의 옷 주름은 앞쪽 주름이 ‘Ω’자 혹은 ‘ㅅ’자형을 띠고 있다. 이는 <서울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이하 칠보사 석가여래상), 관룡사 석가여래상과 매우 유사하다.
청계사 목조보살좌상은 복장물이 소실되어 정확한 조성 연도와 조각승은 알 수 없지만, 불상의 상호·신체 표현 등의 양식적 특징, 역사적 기록을 통해 17세기 조각승 현진이 조성한 상으로 추정된다. 제작 시기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의견이 있다. 하나는 1622년 광해군이 세자 이질을 위해 청계사에서 대규모 불사를 행한 사실과 당시 간행된 청계사판 법화경 시주질에 현진의 이름이 실린 점을 근거로, 이 시기 현진이 청계사에서 불상을 조성하였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또 하나는 같은 해 광해군의 정비인 장렬왕후가 왕실과 친정 부모의 안녕을 기원하며 봉안했던 불상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견해이다. 당시 현진 등이 제작한 불상들은 자수사(慈壽寺)와 인수사(仁壽寺)에 봉안되었다가 사찰 폐사 이후 흩어졌는데, 동대문 지장암의 비로자나불상과 칠보사의 석가여래상의 복장유물에서 청계사 간행 묘법연화경이 확인되었고 조각의 규모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불상의 양식은 임진왜란 이후 사찰 재건 과정에서 형성되었으며, 대체로 17세기에 지역마다 대찰을 중심으로 전각이 창건되고 불상과 불화들이 봉안되며 조선 후기 불교미술이 재건되었다. 불상을 봉양하며 납입한 조성기를 통해 제작연대와 제작자 등이 확인되며 많은 조각승과 계보들이 밝혀지고 그들의 양식적 특징과 흐름도 확인하게 되었다. 이들 중 17세기에 불상을 제작한 조각승은 조선 후기 불상의 흐름을 주도한 조각승들로 주목된다.
청계사 목조보살좌상은 발원문이 전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호와 복식 표현 등에서 조선 후기 17세기에 활동한 조각승 현진의 양식적 특징을 잘 갖춘 상으로 작품의 완성도에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높다.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누리집(여기)
의왕 청계사 목조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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