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MEDIA OBJECT
문화유산
| 지정구분 | 도지정유산 |
|---|---|
| 종목/번호 | 도 유형문화유산 |
| 명칭(한자) | 南楊州 興國寺 地藏菩薩圖 |
| 유형 | 유물 / 불교회화 / 탱화 / 보살도 |
| 지정일 | 2024-04-30 |
|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흥*** |
| 시대 | 조선시대 |
남양주 흥국사는 수락산 동록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봉선사의 말사이다. 창건은 신라 599년 원광법사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전하나, 현재 사찰의 위상은 조선시대 왕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다. 1568년 선조가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원당을 설치하면서 왕실 원찰로 기능하였고, 정조 대에는 오규정소(五糾正所)로 지정되는 등 지속적인 후원을 받으며 사격이 높아졌다. 19세기 초 화재 이후 왕실 지원으로 중창되었으며, 현존 건물은 대부분 이 시기 이후에 조성된 것이다. 한편 흥국사는 서울·경기 지역 화승들이 활동하던 중심 사찰로, 경산화소(京山畵所)라 불리며 불화 제작과 화승 양성의 거점 역할을 하였다.
남양주 흥국사 지장보살도는 사도세자의 서거 30주기인 1792년 왕실 지원 아래 명부전 존상과 함께 조성된 후불탱화로, 발원문을 통해 비구 쾌정(快定)과 의심(矣心)이 주도하여 지장보살도와 시왕도 등을 일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화면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한 좌우대칭 구도를 이루며, 대좌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배치되고, 그 바깥을 육광보살과 6위의 시왕, 사천왕이 둘러싸며 상단에는 시방제불이 자리해 있다.
청색 연화좌에 앉은 지장보살은 비구형 체발 위에 투명한 흑두건을 썼으며, 보살임에도 편단우견 위에 부견의를 입은 대의를 착용하는 등 불상과 유사한 복식을 하고 있다. 오른손에는 보주를 들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다리 위에 살짝 얹고 있다. 18세기 후반 지장보살도에서 나타나는 세장한 신체와 갸름한 얼굴, 섬세한 이목구비 등 도상적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으며, 시왕과 사천왕에서는 보다 개성과 입체감을 강조하여 각 상의 특성에 따른 표현 차이를 보여준다.
채색은 붉은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삼아 군청색과 황토색을 배합하였다. 전반적으로 깊어진 청녹색 계열의 색감은 18세기 후반 불화 양식을 반영하며, 탁하지 않은 색조 속에서 지역적 특성이 드러난다. 관모와 지물 등에 사용된 금니와 고분 기법은 전체 색감과 조화를 이루어 작품의 격조를 높이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세밀한 표현과 섬세한 필치가 돋보인다. 또한 상단에는 제작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복장낭 2점이 드리워져 있는데, 18세기 불화에 복장낭이 남아있는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화기는 화면 하단 중앙에 남아 있으나 박락과 탈락이 심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1797년(건륭 57)에 제작되어 흥국사에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정조대왕과 왕비 효의왕후, 왕대비 정순왕후 등 왕실의 안녕과 장수를 축원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화승에 관한 직접적인 정보는 없으나, 같은 전각에 봉안된 시왕도 및 장군사자도와 화풍이 유사하여 제작자가 동일할 것으로 추정된다.
남양주 흥국사 지장보살도는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사찰에서 제작된 18세기 불화로 당대 불화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짜임새 있는 구성과 정확한 묘사력, 품격 있는 존상표현과 깊이 있는 색감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제작연대가 명확하고 화격이 우수하며, 18세기 수도권 불화의 현존 사례가 많지 않음을 고려할 때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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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흥국사 지장보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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