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MEDIA OBJECT
문화유산
| 지정구분 | 도지정유산 |
|---|---|
| 종목/번호 | 도 유형문화유산 |
| 명칭(한자) | 華城 萬儀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腹藏典籍 |
| 유형 |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불상 |
| 지정일 | 2024-04-30 |
| 소재지 | 경기도 화성시 만*** |
| 시대 | 조선시대 |
화성 만의사는 무봉산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주요 문화유산으로는 〈화성 만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전적〉, 〈화성 만의사 지장시왕도〉 등이 있다.
화성 만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석가여래·약사여래·아미타여래로 구성된 삼존불이다. 세 불상은 모두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반개했으며, 각기 다른 수인을 취하면서도 신체 비례와 상호 표현은 공통된 양식을 보인다. 대의의 옷 주름을 깊게 새긴 것이 특징이며 무릎은 높게 표현하여 안정적인 자세를 보인다.
본존과 협시불은 크기를 다르게 조성해 존격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 본존 석가여래좌상은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17세기 다른 여래상과 구분되는 변형 우견편단 착의법을 적용하였다. 반면 협시불인 약사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좌상은 설법인을 취했으며, 우협시 아미타여래좌상은 오른손을 위로, 좌협시 약사여래좌상은 왼손을 위로 들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손 표현은 17세기 석가여래삼불좌상과 삼존상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협시불은 양 어깨를 덮는 부견의를 대의 안에 착용해 두 팔을 모두 감싸고 있어 본존의 착의법과 차이를 드러냈다. 왼쪽 무릎 위에 대의 자락을 두텁게 조각한 본존 석가여래좌상과 달리 두 여래상은 이를 생략하였다.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발원문이 남아 있지 않아 누가 조각했는지 알 수 없지만 상호와 신체, 옷주름 표현 등이 혜희 계보의 조각승 금문의 작품과 유사하다. 금문의 주요 활동 시기는 17세기 후반으로, 화성 만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의 추정 제작 시기와도 일치한다. 금문이 제작에 참여한 안성 봉덕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의 상호 표현, 옷 주름의 형태 등에서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다. 화성 만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혜희와 금문 계보 조각승의 활동 범위가 평택·화성·안성 등 경기 남부 지역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는 기준작이 된다는 점에서 역사적 중요성이 있다.
한편 2021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복장 조사에서 『묘법연화경』 9점이 발견되었다.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묘법연화경』 대부분은 구마라집이 한역하고 송나라 계환(戒環)이 주해한 7권본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널리 유통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60여 종 이상의 판본이 간행되었으며, 크게 ‘대자본(정희왕후 발원)계열’, ‘초주갑인자본 계열’, ‘을해자본 계열’, ‘성달생서본 계열’, ‘간경도감판본 계열’ 등으로 구분된다.
화성 만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복장전적 『묘법연화경』은 15~16세기 조선 전기에 유통된 ‘대자본(정희왕후 발원본) 계열’, ‘초주갑인자 계열’, ‘성달생서본 계열’ 판본으로 확인되며, 모두 번각본이다. 표지가 없고 일부 결락이 있으나 본문의 인쇄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복장 전적으로 확인된 『묘법연화경』은 조선 전기 유통된 다양한 판본 계통을 보여주며, 번각본의 유통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기록자료이다. 특히 전체가 15~16세기에 간행된 목판본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의 번각본으로 평가된다. 향후 추가 조사를 통해 그 가치가 더욱 증대될 여지가 있다.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누리집(여기)
화성 만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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