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MEDIA OBJECT
문화유산
| 지정구분 | 도등록유산 |
|---|---|
| 종목/번호 | 도등록문화유산 |
| 유형 | 등록문화유산/건축물/교육시설 |
| 지정일 | 2024-09-27 |
| 소재지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시청로45번길23(남양리 1633-1) 남양고등학교 |
| 시대 | 1954년 5월 31일 준공 |
남양고등학교의 시초인 남양고등공민학교는 남양유치원을 빌려 1949년 인가를 받았다. 이듬해 면장과 면민이 기성회를 조직하여 남양중학교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중단되었다. 1952년에는 정영덕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기금을 모아 같은 해 10월 기공식을 했다.
본관 건립에 사용된 화강석은 학교에서 2.5km 정도 떨어진 신남리 석산에서 채석했는데, 정영덕이 소유한 트럭으로 동양초등학교 앞 역골천 개울가에 석재를 부어놓으면 주민들이 본관 터까지 날랐다. 본관 터와 운동장의 터파기 역시 주민이 직접 참여했다.
학교 건물이 완공되기 전인 1953년에 남양중학교를 개교했고, 1954년 남양고등학교 인가를 받았다. 당해 9월 13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남양중학교 낙성식 기사에는 학교 건립 시 지붕 목재를 미군에서 공급했다는 증언 외 「케」중령과 정영덕의 노고를 기록했다.
남양고등학교 구 본관은 동서 방향으로 길게 뻗은 장방형 평면을 가진다. 교실은 총 7개로 구성되어 중앙 현관을 기준으로 동측에 3실, 서측에 4실이 배치됨으로써 좌우 비대칭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처마보다 높은 굴뚝과 그 사이의 좁고 긴 창문들로 구성되었고, 건물의 출입구는 중앙 현관 한 곳과 복도 양쪽 끝에 두 곳, 그리고 후면 중앙 및 양단부에 세 곳이 마련되어 있다.
건물의 외벽은 화강암을 바른층쌓기 방식으로 쌓은 구조이다. 이때 사용된 화강석은 표면을 거칠게 다듬은 혹두기 마감으로, 외부에 사고석 크기의 화강석을 쌓고 그 내부에 콘크리트를 채우는 방식이다. 굴뚝 안쪽에는 콘크리트 타설 시 사용했던 판재 거푸집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정면 외벽 중 원형이 남아있는 부분의 두께는 평균 530㎜이고, 건물이 가로와 세로의 평면비가 7.2 대 1인 매우 세장한 형태이기에, 조적식 벽체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한 간격으로 부축벽을 설치하였는데 정면 부축벽은 굴뚝을 겸하였다.
창문은 초기 목재 단창에서 현재는 변경되었다. 출입문은 현재 강화유리문으로 교체되었지만, 초기에는 목재 프레임을 짜고 유리를 끼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면 출입구 상부에는 맞배지붕을 설치했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지붕 구조는 왕대공 트러스 구조를 기본으로 하는 우진각지붕 형태를 띠고 있다. 평보는 휨 변형에 대비하여 덧댐목을 설치하는 등 구조적으로 보강했다. 지붕재는 초창기에 시멘트 기와를 사용하였지만 2013년 지붕 공사를 통해 빗소리 소음을 줄여주는 제진 칼라강판으로 교체했다. 초창기 마감은 화강석 두겁석이었으며 현재는 강판으로 감싸 마감하였다.
남양고등학교 구 본관은 착공 이후 크고 작은 수리를 거치며 일부 변화가 생겼으나 전체적인 구조와 외관에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현재는 교실로는 사용하지 않고 서측 공간 전체를 도서관으로, 동측 공간은 행정실, 교장실, 회의실로 활용하고 있다.
남양고등학교 구 본관은 한국전쟁의 혼란한 시기에 지역민들이 교육을 통한 국가재건을 염원하며 세운 건축물로,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어 학생들이 몰리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고 교육시설로서의 기능을 유지하여 역사적·사회문화적·건축기술적 가치가 높다.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누리집(여기)
화성 남양고등학교 구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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