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MEDIA OBJECT
문화유산
지정구분 | 도등록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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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번호 | 도등록문화유산 |
명칭(한자) | 河南 龜山聖堂 |
유형 | 근현대건축물 |
지정일 | 2023-03-31 |
소재지 |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한강로 131(망월동) 구산성당 |
시대 | 1956년 건축, 2016년 이축 |
‘구산(龜山)’은 서울에서 양평으로 가는 뱃길의 길목에 있는 지명으로, 마을을 둘러싼 산의 모습이 거북이를 닮았다는 데서 붙여졌다. 현재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도시(하남미사 공공주택지구)에 포함되어 있다. 1956년 성당이 준공된 곳은 망월리 358-3번지로, 2009년 국토교통부에 의해 택지개발지구에 포함되어 원위치에서 약 200m 떨어진 현 위치로 2016년 원형이축하였다.
구산마을은 일찍이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곳이다. 프랑스 선교사 모방(Maubant) 신부와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에 의해 1836년 처음 시작되었고, 이곳에서 모방 신부가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를 마카오 신학교를 보내기도 하였다. 1839년 구산공소가 설립되었으며 이후 구산성당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해박해로 1841년 순교한 성인 김성우 안토니오는 이곳의 초대 공소회장이었다. 성인 김성우 안토니오를 포함한 9명의 순교자가 이 지역에서 출생하였고 그 9인의 유해를 안치한 구산성지(하남시 향토유적)가 인근에 있다.
6.25 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1956년까지, 교인들의 자발적인 참여하에 망월리 358-3번지의 대지 502평을 매입해 성당을 건축하였다. 열악했던 당시 상황에서 교인들이 직접 한강에서 채취한 모래와 자갈로 시멘트 벽돌을 만들었다 전한다. 내부를 통칸으로쓰는 장방형 평면의 강당형 성당(Hall Church)으로 1950년대에 지어진 의정부2동성당(경기도 문화유산자료), 서울 혜화동성당(국가등록문화유산)과 같은 고딕건축양식이다. 정면 중앙에 위치한 주출입구 위로 종탑이 설치되었고 좌우에는 부출입구가 있다. 1.0B(=두께 190㎜)의 조적조 벽체로 지어진 까닭에 창호는 세로로 긴 창호로 구성되었으며, 구조적으로 취약할 것이 예상되는 부분에 부축벽을 설치하였다. 지붕은 목조 트러스 위에 동판으로 마감하고, 경사면 양쪽 두개씩 도머창이 있다. 장식이 없는 작은 규모로 고풍스러운 외관을 가졌다.
2009년 하남시 미사강변지구 개발권에 포함되면서 철거의 위기를 맞게 되자, 교인들이 다시 단합했다. 자발적인 이축 계획을 모금을 통해 성사시켰다. 2016년 12월 현재 위치로 이축했다. 원형 그대로의 건축물에 레일을 깔고 유압잭을 사용해 조금씩 미는 방식으로 약 200m를 이동시켰다. 이 같은 방식의 원형 이축은 국내 최초의 사례이다. 이축 시 건물에 철근콘크리트의 기둥 보를 덧대어 구조를 보강했으며, 버트러스가 있는 벽면에는 RC기둥을 덧대어 하부 줄기초에 지중보를 설치, 직결하여 일체화된 구조체를 만들어 냈다. 이는 횡좌굴(외부 힘에 의해 보가 축의 수직방향으로 비틀려서 좌굴하는 현상) 방지를 위한 것이였고, 그외 부재들은 일부 해체되었었다. 2019년 보수공사로 현재모습을 갖췄다. 종탑을 재설치하고, 창호, 마감재 등 기존의 건축 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하여 최대한의 원형 보존을 위하여 노력했다. 성당의 출입구 문은 안전을 위해 방화문으로 교체하였지만, 원모습이 진정성 있게 유지되고 있다.
구산성당이 한강변 언덕지대에 위치했던 지리적 가치와 상징성을 잃어버려 장소성이 훼손되고 가치가 떨어졌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원형을 보존하고, 지속적으로 예배공간으로 사용하며 가치를 형성해 나가고 있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철거 후 신축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편리했을 수 있지만, 성당의 정신적 의미와 가치를 중시하여 보존해 낸 사례로 역사적, 사회문화적 가치가 있다.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누리집(여기)
하남 구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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