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MEDIA OBJECT
문화유산
지정구분 | 도등록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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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번호 | 도등록문화유산 |
명칭(한자) | 興化學校 會計簿 및 證書類 |
유형 | 등록문화유산 / 기타 / 동산 |
지정일 | 2023-10-13 |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3로 79 용인시박물관 |
시대 | 1906년, 1909년, 1910년, 1911년 |
용인시에 묘소(민영환선생묘, 경기도기념물)가 있는 한 말 독립운동가 민영환(閔泳煥, 1861∼1905,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열사가 세운 민족사립학교인 흥화학교 관련 실증 유물이다. 민영환은 전권공사로 서구 제국을 둘러본 뒤, 외국어와 선진 문물의 수용을 목적으로 학교를 설립하였다. <흥화학교 회계부 및 증서류>는 흥화학교의 회계부(1906) 1점을 비롯하여 흥화학교 학생이었던 윤희겸(尹希謙)이 받은 포증서(1909), 진급증서(1910), 졸업증서(1911) 각 1점, 총 4점이 일괄 등록되었다.
흥화학교는 1898년 10월부터 1911년까지 존속하였다. 존속기간이 짧지만, 개화자강론자들과 사립학교 설립자들의 교육에 대한 인식과 사학에 대한 실상을 이해하는데 좋은 예가 된다. <흥화학교 회계부 및 증서류>는 민영환 사후인 1906년부터 총독부의 사립학교령으로 폐교되기 전까지 기간에 걸쳐 작성되었다. 전반적인 흥화학교의 운영 양상뿐만 아니라, 한말 교육사와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자료이다.
1905년 11월 30일, 교장 민영환의 순국은 흥화학교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렸다. 재정 악화 등으로 개교 이래 최대의 어려움을 겪으며 폐교 위기까지 몰리게 되었다. 1906년에 작성된 회계부는 이러한 당시 흥화학교의 상황의 증거가 된다. 이는 기존에 주로 신문 보도를 통해 파악되던 학교의 실태가 확인된다. 입출금 내역이 간략히 기록되어 있으나, 민영환 발인(1월)과 추도회(12월)에 관련된 지출 내역으로 학교가 민영환과 관련한 일들을 주도했음을 알려준다. 입금 내역 중 고종 황제가 하사한 내탕금 등은 황제가 학교 부흥을 직접 지시했음을 뒷받침 한다. 이외에 월별로 확인되는 개인 또는 단체 후원금 입금과 사용내역으로 학교의 재정 운영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자료이다.
또한 연속성을 가진 자료로, 흥화학교 교과과정, 교수진 등 변화 양상을 볼 수 있어 교육사 연구에도 중요 자료가 된다. 교과목명, 교수진, 구매된 교과서 등의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애국계몽운동시기 국어국문연구와 교육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한 주시경(周時經, 1876〜1914, 건국훈장 대통령장), 이중화(李重華, 1881〜미상, 건국훈장 애족장), 이상준(李尙俊), 여규형(呂圭亨). 유병필(劉秉秘)과 백상규(白象圭) 등 당시 지식인들의 교사 활동 상황을 알 수 있다. 교육사적 가치에 더해 국어사적으로도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한자 작성을 기본으로 하였지만, 외래어는 한글로 적었다. ‘하퍼지지(하퍼地誌)’, ‘청잉크일병(靑잉크一瓶)’, ‘일제비스켓이편(曰製ᄲᅵ스켓二斤)’ 등 항목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증서들에서 보이는 형식과 내용의 차이에서는 급변했던 시대적 흐름도 드러난다. 융희(隆熙)에서 메이지(明治)로 연호가 바뀌고, 증서지 장식도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에서 흥화학교의 표식으로 바뀌는 변화는 경술국치가 끼친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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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화학교 회계부 및 증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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