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MEDIA OBJECT
문화유산
지정구분 | 도등록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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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번호 | 도등록문화유산 |
명칭(한자) | 槿花唱歌 第一輯 |
유형 | 등록문화유산 / 기타 / 동산 |
지정일 | 2022-04-06 |
소재지 |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평택호길 147, 한국근현대음악관 |
시대 | 일제강점기 |
‘창가’는 갑오개혁 이후 발생한 근대 음악 형식의 하나로 서양 악곡의 형식을 빌려 지은 간단한 노래를 말한다. 『근화창가』 제1집은 출판사 ‘근화사’에서 창가를 엮어 펴낸 책이다. 근화사는 1920년 이전 노영호에 의해 설립되었고, 1927년에 문을 닫았다. 민족의 상징적인 꽃 이름인 ‘근화’를 출판사의 이름으로, 같은 이름의 출판물들을 준비해 문학동인지 『근화』, 악보집 『근화창가』, 잡지 『근화교육』을 출간하였다. 노영호는 창가의 작ㆍ편곡자 및 작사가로 활동했음이 알려져 있으며, 주로 조선어와 조선문학에 열정을 쏟았던 것으로 보인다.
『근화창가』 제1집은 1921년 첫 출판 이후, 1923년 3월 10일 재판되었고, 1939년 12월 1일 조선총독부가 ‘치안’을 사유로 금지시켰다. 음악학자 故 노동은 교수가 발굴, 소장 중이던 것을 2019년 유족께서 평택시에 기증하였다.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이전까지는 출판 여부만 알려졌던 『근화창가』의 실물 존재가 처음으로 밝혀졌으며, 등록문화유산인 두 권 외에는 현존함이 확인되지 않아, 희소성이 매우 높다. 초판본을 발행한 지 약 6년 만에 출판사 근화사가 문을 닫았고, 1939년 금지 처분되어 판매 및 유통된 실물의 수가 비교적 적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책에는 총 7곡, <조선의 자랑>, <을지문덕>, <고려 명장 강감찬>, <ᄭᅮᆺ바이>, <어머니의 사랑>, <새벽빗>, <시조>가 수록되어 있다. 다른 창가집에서 확인되지 않은 새로운 곡들로, 곡마다 다른 유형의 음악적 특징을 보이는 점이 특이점이다. 수록곡들이 계몽가요의 성격을 지니는 점 등이 한국음악사적 측면에서 가치가 있고, 모두 오선지 악보가 있어 직접 노래할 수 있다. 작사가를 기록하지는 않았다.
<조선의 자랑>은 미국 독립전쟁기에 작곡된 헨리 클레이 워크의 ‘조지아 행진곡’의 곡조에 가사를 붙였다. 가사는 1890년대 말, ‘애국계몽운동’ 일환으로 만들어지던 애국가류에 사용되던 단어들을 포함하고 있어 애국가를 방불케 한다. 이 노래는 직접적인 금지 처분의 사유가 되었다. <을지문덕>과 <고려 명장 강감찬>은 국가를 지킨 영웅을 노래한다. 살수대첩에서 수나라 군대를 몰살시켜 승리로 이끈 고구려의 을지문덕은 평이한 서양식 곡조로, 거란족과 싸워 이긴 고려의 강감찬은 당시 항일가요로 유행했던 ‘용진가’와 비슷한 선율로 편곡하여 노래한다. 도산 안창호의 계몽가요를 연상케 하는 곡들도 있다. <ᄭᅮᆺ바이>는 이별을 아쉬워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노래로, 안창호의 ‘만나 생각(상봉유사, 언제나 언제나)’을 연상케 한다. 곡조는 전형적인 서양식이나, 두 사람이 서로 메기고 받는 형식의 후렴구가 있어 여럿이 참여하여 부를 수 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돈과 명예가 생겨도 어머니의 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가사로서 안창호의 ‘부모은덕가(산아 산아 높은 산아)’를 연상케 한다. 이 곡은 일반적인 창가풍의 노래이지만 음역대가 높다는 특징이 있다. <새벽빗>은 고난의 시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싹이 틀 것이라는 희망을 주제로, 일본식 유행가 곡조를 사용한, 일반적인 대중가요이다. <시조>는 정몽주의 단심가를 가사로, 전통음악인 평시조(平時調)를 오선보로 채보하였다. 시조는 요성과 전성 등의 고유한 특징인 시김새가 복잡하기 때문에 오선보로 표현이 어렵다. 때문에 당시 민요를 채보한 경우는 더러 있지만 시조나 가곡 같은 예술장르의 곡을 채보한 일은 흔하지 않았다.
등록문화유산인 두 권은 두 가지 다른 판본이 함께 발굴되어 소장된 첫 사례인 점도 중요하다. 몇몇 차이점으로 각각 초판본과 재판본으로 추정되는데 모두 표지와 내지의 큰 누락 없이 비교적 온전한 실물로 발굴되었다. 본문은 동일한 조판으로 인쇄되었지만 구성에 차이가 있어 각기 다른 판권으로 판단된다. 두 책 모두 판권지와 쪽수 표시가 없어 각 권의 출판시기를 특정 짓긴 어렵지만, 서로 상호 보완적인 부분이 있고 현재 확인 가능한 단 두 권이라는 점에서 모두 가치가 있다. 첫 번째 책은 오선지 등의 표지화가 돋보이는 앞표지가 남아있다. 제호인 ‘근화창가’의 예서체와 악보가 눈에 띈다. 목차면 바로 뒷면부터 <조선의 자랑> 가사가 인쇄되었다. 후반부가 멸실되어 <새벽빗>·<시조>와 뒤표지가 없다. 반면 두 번째 책은 앞표지는 없지만, 악보와 가사를 온전히 가지고 있다. 목차면 뒤에 공백면을 두고 다음 장부터 <조선의 자랑>가사가 시작된다. 두 번째 책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데, 소장자에 의해 다시 제책 되면서, 책의 상하 여백을 재단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근화창가』 제1집은 1920년대 조선의 관공립학교에 배포된 창가집에서 볼 수 없는 노래들로 모두 한글 가사를 사용하고 있다. ‘을지문덕’, ‘강감찬’과 같이 우리 역사의 영웅적인 인물을 노래한다는 것만으로도 애국창가집으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볼 수 있다. 이 책의 출판이 3.1 운동 이후 일본의 탄압이 고조화 된 시기임을 생각하면, 애국사상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노래를 보급ㆍ배포하려 하였던 독립출판사의 도전과 투쟁까지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때문에 항일 운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자료출처]
- 경기도등록문화유산 등록 심의보고서, 2021, 경기도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누리집(여기)
- 평택 한국근현대음악관 누리집(여기)
근화창가 제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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