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영덕동 유적은 수원의 동북쪽 경계지역에 용인 흥덕지구 택지개발부지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구제발굴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주거지, 원형수혈, 건물지, 우물, 경작유구, 저수시설, 수로, 기와가마, 숯가마, 묘 등 주거와 생활, 생산활동과 관련한 486기의 다양한 유구가 조사되었다.
백제 주거지는 2기가 타원형, 장방형으로 각각 1기가 조사되었는데 내부에서 노지와 주공이 확인되었다. 심발형토기 장란형토기, 원저호, 파수부 동이 등의 출토유물로 보아 중심연대는 한성백제 Ⅰ기로 추정된다. 백제 원형수혈은 26기가 조사되었는데 단면 상협하광·상협하광으로 저장공, 벽공, 추정 선반시설이 확인되었다.
원천천변에 인접한 야트막한 독립구릉에 단독으로 조성되어 있어 이전까지 제시되었던 저장기능 뿐만아니라 주거의 기능도 추정해 볼 수 있다.
특히 신라시대 저수시설은 조사지역을 관통하는 자연수로의 물을 입수로를 통해서 끌어들이는 구조로 오산 가수동유적과 양상이 비슷하고 시기적으로도 유사하다.
유물은 완, 호, 고배 등이 토기류와 목제괭이, 두레박걸이, 쐐기, 말목 등 다양한 목기류가 다량 출토되었다. 목기류는 출토예가 드문 가공품이 주류를 이루는데 농구와 생활도구, 건축부재 등은 무안 양장리, 광주 신창동, 창원 다호리, 부여 궁남지, 광주 동림동, 오산 가수동 출토품과 비교연구를 통해 고대 목기에 대한 새로운 연구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을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유구는 주거지, 우물, 수혈, 제의유구, 경작유구 등 다양하게 확인되었다. 우물을 중심으로 주변에 주거지가 분포하고 경작유구와 제의유구가 취락의 남쪽 경계를 이룬다. 마을구성의 기본요소인 주거지, 저장 및 격납시설, 우물, 경작지, 제의유구가 확인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상대적으로 발굴자료가 빈약한 이 시기 유구가 다량 확인된 자체만으로 의의가 크다. 또한 청동제 허리띠장식품과 보습, 볏 등 철제우경구가 출토된어 취락의 위상과 성격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고려시대 건물지는 삼국시대 저습지 유적이 폐기된 후 조성되었다. 기와가마는 반지하식 등요로 연소실과 소성실이 확인되며 내부에서 어골문, 사선문 평기와가 다량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건물지에서는 고막시설이 확인되고 온돌이나 다른 부속시설이 확인되지 않아 특수목적의 건물로 추정된다, 주거지는 21기가 조사되었는데 부뚜막시설, 원형대로 확인된 벽감형 저장공, 평기와를 이용한 배연시설이 확인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회곽묘에서 출토된 백자명기와 금박저고리, 호랑이흉배 단령 등의 복식은 16세기 중후반의 장묘문화와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주목된다.
[참고문헌]
경기문화재연구원·한국토지주택공사, 2010`, 『용인 영덕동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