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목리 기와가마터는 제1중부고속도로와 제2중부고속도로를 아우르는 미래지향적 복합문화휴게시설 개발을 위해 계획된 마장복합문화시설사업을 시행함에 앞서 (주)하이플렉스가 고려문화재연구원 의뢰하여 실시한 지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에 시굴조사를 의뢰하였고 시굴조사에서 유구 및 유물이 확인되어 발굴조사로 전환되었다.
조사지역은 이천시 마장면 목리 13-22번지 일대로 시굴조사는 2011년 8월 30일에서 동년 9월 30일까지 17,098㎡의 면적에 대해 진행되었으며, 시굴조사 결과 시굴조사 1구역에서 기와가마 2기, 회구부 2기, 소성유구 1기 등의 유구와 유물의 흔적이 확인되어 발굴조사로 전환되었다. 2011년 11월 1일부터 동년 12월 16일까지 유구가 확인된 621.5㎡에 대해 발굴조사를 진행하였고 발굴조사결과 통일신라~고려시대 기와가마 6기와 적석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조사된 6기의 가마는 뒷말림산에서 이어지는 능선의 남서쪽 사면에 입지하고 있다. 주변에는 목재가 풍부하고 점성이 강한 고토양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으며 남쪽 1.7㎞지점에는 복하천의 지류인 장암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다. 가마는 모두 등고선에 직교하는 방향으로 조성되었으며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4·5호가마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등간격으로 조성되었다.
6기의 가마는 지하식의 등요로 요전부는 점토층의 굴착면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아궁이는 형식상 석축식보다 아궁이식이 우세하지만 석재를 사용하여 아궁이를 조성하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아궁이에서 연소실로의 단면은 모두 내외평탄이며 불턱의 경사도는 대체적으로 가파르다. 제형(梯形)의 소성실이 우세하며 소성실의 경사도는 24~32°이다.
1·4·5호가마의 소성실은 무시설식으로 원삼국~백제시대 이후의 지역적인 전통을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2호가마는 주형(舟形)의 소성실을 가지고 있으며, 번와를 위해 시설한 6열의 횡와열이 특징적이다.
3호가마는 방형(方形)의 소성실을 가지고 있으며, 구들장을 기와편으로 대체한 토대식 구들구조가 특이하고, 6호가마는 소성실 바닥의 부와(敷瓦)시설이 주목된다. 연도가 확인된 가마에서 볼 수 있듯이, 대체적으로 주형 또는 제형의 소성실을 가진 가마들은 한개의 연도를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굴뚝은 석재를 이용하여 조성하였다.
목리 기와가마터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평기와로 문양의 종류는 고려초기의 대표적 문양인 태선문 계열을 비롯하여 사선문, 집선문 격자문, 어골문, 방사선문등이 중심문양이다. 명문와는 크게 4가지 종류로 볼 수 있는데 집선문에 시문된 ‘因囯’명과, 사격자문에 시문된 ‘南川官’명, 방사선문에 횡으로 시문된 ‘南川’銘 그리고 어골문에 시문된 ‘田’자 명문와이다.
이중 특히 ‘南川官’銘 명문와가 주목되는데, ‘官’이라는 의미에서 수요처로서의 관영시설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이에 주변의 관방유적 중 인근에 위치한 설봉산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설봉산성 3차발굴조사에서도 사격자문에 ‘南’명문이 시문된 기와편이 확인되었고, 동반출토 된 명문와 중에는 집선문에 시문된 ‘因囯’銘 명문와와, 어골문에 시문된 ‘田’銘 명문와 등이 있으며, 출토 기와의 문양 구성도 목리 기와가마터 출토기와의 문양과 동일하므로 이천 목리 기와가마터는 설봉산성에 기와를 납품하던 공급처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출토 기와의 속성에서 알 수 있듯이 목리 기와가마터의 출토기와는 통일신라~고려시대에 걸친 기와들이며, 설봉산성은 삼국통일기를 중심으로 편년되고 있는 실정이므로 이 부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설봉산성의 ‘南’銘 명문와는 ‘南川州’, ‘南川停’과 관련되어 해석되었는데, ‘南川官’이 과연 신라~통일신라시대의 치소를 지칭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향후 설봉산성에서 ‘南川官’과 관련된 직접적인 자료가 확보되고 이와 관련된 연구자료가 축적된다면, 이 부분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져 ‘南川官’의 실체가 확인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천 목리 기와가마터는 이천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기와가마터라는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인근 설봉산성에서 확인된 기와들과 동일한 구성의 기와가 확인된 점으로 미루어 공급처와 수요처가 확인된 유적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조사지역이 주변 능선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아 정확한 가마터의 범위 및 구조 등을 알 수는 없지만, 본 보고서가 통일신라~고려시대 기와 및 기와가마 연구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기를 희망하며, 이번 보고서의 발간을 통해 중부지방 통일신라~고려시대 기와가마터 연구의 활성화를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경기문화재연구원·(주)하이플렉스, 2014, 『이천 목리 기와가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