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길명리 흑유자 가마는 경기 북부지역 교통난 해소를 위해 포천 일동-영중간 도로 확·포장공사구간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구제발굴조사 하였다. 현재는 도로구간에 포함되어 있다.
유적은 해발 568m의 금주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의 동쪽 사면 말단부에 위치한다. 발굴조사 결과 흑유자 가마 1기와 폐기장 3개소, 공방지, 기타 소성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가마는 격벽이 있는 무단식 분실요로 아궁이, 5개의 소성실 및 연도부로 구성되어 있다. 규모는 잔존 길이 16.5m, 최대 너비 2.3m이며 경사도는 20°이다. 아궁이는 역사다리 형태이며 개개의 정방형에 가까운 소성실은 연도부 쪽으로 갈수록 폭이 넓어진다. 연도부는 연도와 초벌구이실을 겸한 구조로 별도의 간이 아궁이 시설을 한 것으로 보인다. 출입 시설은 각 소성실과 연도부의 좌측 하단에 한 개소씩 모두 6개소가 확인되었다.
가마 벽의 축조 방법은 부분별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아궁이는 별도의 구조물 없이 굴광한 면에 점토를 발라 사용하였고, 소성실의 벽체는 잡석, 가마 벽체, 진흙 등을 섞어 사용하였다. 격벽부는 최하단에 불창을 두었는데, 불창 기둥을 바닥에 일정한 깊이로 묻어 고정시킨 후 불창 기둥 폭 정도를 띄우고 다시 불창 기둥을 세우는 방식으로 8~11개의 기둥을 설치하였다. 불창 기둥 위에서 천장까지 는 ‘品’자 형태로 점토 덩어리를 쌓아 벽을 막는 방식으로 격벽을 만들었다. 마지막 소성실의 연도부에는 뒤쪽 석축렬과의 사이에 일정한 공간이 있으며 석축 뒤로도 또 다른 공간을 둔 후 가마의 최후 벽을 세웠다. 이러한 석축 중심 공간은 별도의 초벌구이실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가마의 구조와 관련하여 초벌실의 구체적인 존재와 형태에 대한 명확한 예를 보여줌으로써 조선후기 백자가마와의 비교연구에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길명리 흑유자 기종은 생활용기인 항아리와 병, 편구발이 다수를 차지하며, 소성방법으로 보아 주문제작품일 가능성이 있다. 길명리 흑유자 특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다른 지역 흑유자와 비교 연구가 이루어질 때 조선후기 흑유자기의 생산과 유통에 단쵸를 제공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함께 출토된 백자, 도기, 기와 등과도 좋은 비교 자료가 되고 있다. 가마의 운용 시기는 19세기대로 보인다.
[참고문헌]
기전문화재연구원·서울지방국토관리청·(주)효자건설, 2006, 『포천 길명리 흑유자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