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동학산유적은 삼성전자에서 시행한 화성지방산업단 조성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이번 조사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44棟, 수혈 34基, 환호 4列, 묘 4基, 탄요 4基, 구상유구 6條등 총 113基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지표상에서 즐문토기편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자기·기와류 등의 여러시기 유물이 출토되었으나 중심이 되는 것은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원형점토대토기가 출토되는 환호와 수혈이라 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해발 110m 내외의 동학산 구릉 정상부를 비롯한 사면부에 위치하며, 장축방향이 등고선 방향과 거의 평행하게 축조되었다.
입지상으로 黃口池川과 烏山川유역을 충적대지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잔구성 구릉지대의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한 高地性聚落이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세장방형과 장방형계통이며, 방형으로 추정되는 유구도 확인되었다. 토기는 주로 구순각목공열문, 공열문이 시문된 심발형토기와 호형토기 등이, 석기는 이단병식의 석검편과 석촉, 석착, 합인석부, 주상편인석부, 방추차, 갈돌, 갈판, 찰절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조합은 소위 역삼동유형으로 구분되는 것과 일치하므로 축조시기는 청동기시대 전기로 볼 수 있다. 취락의 초축시기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 없지만, 16호 주거지에서 즐문토기의 구연부편이 수습된 사실로 미루어 청동기시대 조기부터 취락이 형성되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다. 취락의 유형이 밀집분포형인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역삼동유형의 주거지 분포는 구릉의 가지능선 상에 2-3기 분산하여 분포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는데, 본 유적의 경우에는 44기가 2개의 군을 이루면서 밀집분포하고 있다. 이런 밀집분포가 이루어진 것이 소지역의 전통인지, 시기적인 차지인지, 입지의 우월성 때문인지, 아니면 생업경제의 차이인지 등등에 대해서는 차후에 체계적인 검토가 요망된다.
초기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은 환호유적과 수혈유구만이 확인되었을 뿐이고, 환호와 관련된 서쪽 곡간부 지형에서 유물이 다량으로 수습되는 점으로 보아 유적이 가지는 당시의 성격을 알 수 있다. 환호유적의 기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동학산유적 환호는 제의와 관련된 시설로 판단된다. 그 근거로는 구릉 정상을 따라 테를 두른 듯 一周하지 않고, 깊이와 폭에서 정형성이 없는 점, 환호 내부에 주거지와 같은 생활유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 점, 2~3중으로 단기간에 만들고 장기간에 걸쳐 관리되지 않은 점, 내부에서 비실용성의 소형유물과 제의 후 의도적인 破碎를 암시하는 폐기유물이 다수 출토되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환호 내에서 銅鑿鎔范이 지표에서 수습된 사실과 수습지점 주변에서 爐蹟이 발견된 점은 특기할 만한데 고지성의 환호와 관련하여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최첨단 산업단지인 (주)삼성전자의 공장조성부지에서 청동기후기로서는 첨단기술이었을 청동기생산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하겠다.
동학산유적의 발굴조사 성과로는 청동기시대 전기 주거지가 비교적 온전하게 확인되어 청동기시대 전기 고지성취락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학술적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경기 남부지역의 유물조합상을 보다 선명하게 규정할 수 있는 안정성 있는 고고학적 자료 얻을 수 있었다. 발굴 당시 경기지역에서 처음으로 환호유적이 확인되어 관심을 모았는데, 특히 환호의 성격이 천신제와 관련된 제사유적일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였으며, 청동기의 생산을 입증하는 동착용범을 수습하였던 사실이다.
동학산유적은 (주)삼성전자의 공장부지에 편입되어 B지구 대부분이 기록보존된 상태이며, A지구 정상부에서 확인된 주거지 일부와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C지구만이 현장보존되어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취락의 중심으로 추정되는 C지구가 보존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유적 전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가장 아쉬움이 있으나, 미발굴의 상태로 원형 보존되어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
[참고문헌]
경기문화재연구원·(주)삼성전자, 2007, 『화성 동학산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