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발안리 마을유적은 발안택지개발 사업과정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2001~2003년에 걸쳐 구제발굴조사 하였으며 현재 화성발안 우림필유아파트가 건립되어 있다.
발굴조사 결과 발안천이 곡류하는 지점의 안쪽 충적대지에서 원삼국~백제 수혈 집자리 57기, 구상유구 63기, 굴립주 건물지 30동, 작은 수혈유구 196기, 옹관묘 4기, 야외노지 5개 등 총 370여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구 중복과 유물의 공반 관계를 통해 경질무문토기 단계에서 백제토기 단계로의 집자리 변화 과정과 더불어 마을의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원삼국~백제의 마을 유적으로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확인된 마을 유적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의 ‘凸’자형 집자리에서 방형의 4주식 집자리로 변화되며 주축 방향이 북서-남동향에서 남-북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취사 및 난방 시설은 이른 단계에는 노지만이 발견되나, 노지와 ‘ㄱ’자 형태의 터널형 노지가 공존하는 단계를 거쳐 마지막에 부뚜막만이 잔존하는 단계로 변화한다.
또한 유물 양상에서도 경질무문토기 외반구연옹의 기능을 장란형토기가 대체하며 이전 시기보다 다양한 기종의 토기가 출현하는 변화가 관찰된다.
철기는 극소수 집자리에서 출토되다가 늦은 시기에는 철도자, 철촉, 주조철부, 철겸 등 다양한 철기가 출현한다. 발안리 마을 유적은 초기에 집자리가 열상으로 배치된 형태이었으나, 나중에 정연하진 않지만 군집되는 양상이 확인되는 등 경질무문토기 단계에서 백제토기 단계로의 이행하는 과정에서 백제 중앙과 비교되는 지방의 한 단위 마을의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된다.
발안리 마을유적은 풍납토성과 미사리로 대변되는 백제의 중앙과 비교되는 지방유형의 한 단위 마을의 양상을 보여주는 양호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다양한 평면형태의 주거지와 굴립주건물, 도랑, 수혈 둥을 마을을 구성하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고 유물에 있어서도 중도식무문토기에서 백제토기로의 이행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불분명했던 경기남부지역에서 초기백제의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고 잇다는 점과 아울러 당시 마을의 구성단위와 배치상에 있어서 양호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기전문화재연구원·대한주택공사경기지역본부, 2007, 『화성 발안리 마을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