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대쌍령리유적은 성남~장호원간 도로 공사구간에서 확인되었으며 건설공사에 앞서 통일신라시대 석곽묘 14기, 조선시대 묘와 회곽묘, 수혈 등 총 25기의 유구가 발굴조사되었다.
광주지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통일신라시대의 석곽묘군으로 석곽묘는 대부분 산의 경사면에‘ㄴ’자형으로 묘광을 파고 조성하였으며, 인근 곤지암천에서 조달된 천석을 사용하였다. 일부 횡구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예들도 있지만 대부분 수혈식석곽묘로 천석 또는 할석으로 시상을 마련하였는데 추가장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일부 석곽묘에서는 목관의 사용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조사된 석곽묘는 입지나 규모 등에서 두드러진 점은 확인되지 않지만 인근의 하남 덕풍동과 광암동, 부천 고강동, 군포 산본동 고분군, 파주 법흥리 고분군, 파주 교하 4지구 등의 석곽묘와 비교해 볼 수 있고, 고분군외에 최근 경기도전역에서 조사예가 증가 추세에 있는 마을유적, 생산유적과 비교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유물은 대부장경병, 대부완 등의 토기와 과대금구 및 방울 등의 금속류들이 출토되었는데 이를 통해 본 유적은 8세기 전반에서 9세기 중~후반에 이르는 시기동안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9호 석곽묘에서 출토된 ‘南漢山助舍’명의 동제방울은 신라의 지역집단의 지배 및 주장성으로 비정되는 남한산성과의 관련성이 인정되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사료된다.
유적이 위치한 곳은 이천에서 광주로 넘어가는 대쌍령리 고개로 부근으로 이곳은 하남(이성산성)-광주-곤지암-이천(설봉산성)으로 연결하는 지역으로 하남, 이천과 같은 동일한 교통로 상에 위치한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광주지역에서 통일신라시대 고고학적 자료가 확보되어 이들 세력의 확산 과정과 이 시기 지방통치 체제, 교통로 연구 등에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조사지역의 상부는 조사범위 밖으로 조사가 불가능하였으나 입지상 석곽묘들이 추가 분포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곡부 퇴적토내에서 무문토기 편들이 확인됨에 따라 청동기시대의 유구들 또한 존재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향후 이 지역의 형질변경이 이루어질 경우 사전에 유적의 존재유무 확인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경기문화재연구원·㈜현대건설·서울지방국토관리청, 2008, 『광주 대쌍령리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