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三角山)은 명승 제10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번지,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산68-1번지이다.
삼각산은 서울시 강북구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북한산 산군에 속하는 산봉우리의 일부로서, 백운대(白雲臺, 836.5m), 인수봉(人壽峰, 810.5m), 만경대(萬鏡臺, 787.0m) 등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산봉이다. 삼각산은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북쪽에 인수봉, 남쪽에 만경대의 3봉이 삼각형의 형태로 위치하고 있어 삼각산이라 불러졌다고 한다.
삼각산은 강원도의 백두대간으로부터 갈라져, 서남 방향으로 굽이쳐 흐르는 한북정맥이 경기도 양주군 남쪽에 도봉산으로 일어선 후 다시 우이령에서 등을 낮추었다가 서울 북방에 이르러 높게 솟구쳐 오른 산이다. 삼각산은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한 대보화강암류(흑운모화강암 또는 화강섬록암)로 구성되어 있으며, 형상을 달리한 화강암 돔(Granite dome)을 이루고 있다. 이 산은 화강암의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봉의 모습이 서로 어우러져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돔을 형성하는 산 사면의 경사는 대체로 70°이상에 달하고 있다. 삼각산은 다양한 등반코스가 있어, 암벽등반을 비롯하여 많은 등산객들이 등반하고 있으며, 백운대의 정상에는 약 500㎡의 평탄한 곳이 있어 많은 등산객들이 쉬어 가기도 한다. 만경대는 옛 이름이 국망봉이라 불리어졌으며 정상부의 산세는 불규칙하다.
삼각산은 풍수지리로 보아 수도 서울의 조산(祖山)이 며 종산(宗山)으로 알려져 있다. 삼각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한북정맥의 끝 부분에 형성된 산으로서, 조선의 수도로 한양(서울)이 정해질 때, 북악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그 뒤로 연결된 삼각산을 조종(祖宗)으로 하여 도읍을 정한 것이다.
삼각산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성종 이후부터 1900년대까지 불려 졌으며, 삼국시대에는 부아악(負兒岳)으로, 조선시대 중기에는 화산(華山), 화악(華岳)으로 불리기도 했다. 오늘날 많이 부르고 있는 북한산이라는 명칭은 1711년(숙종 37)에 축성된 북한산성을 근거로 남한산성과 대비하여 서울 북쪽에 위치한 산이라는 의미로 1900년대 초부터 사용된 명칭이다. 삼각산은 백제의 건국과 함께 부아악이란 이름으로 기록에 나타난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고 하며, 부아악은 이 삼각산을 의미한다.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아 국토를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니 한 석비가 있었는데 거기에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는 비석이 있어서 길을 다시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하였던 곳이 바로 이 삼각산이다.
삼각산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쓴 시 “우뚝 솟은 뫼는 하늘까지 솟았네. 한양의 지세는 하늘을 열어 이룩한 땅. 굳건한 큰 대륙은 삼각산을 떠 받쳤고”에 나타나고,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끌려가면서 남긴 김상헌의 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에 등장하기도 하며, 많은 시인 묵객들의 시화에 등장하기도 하는 명산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대관-천연기념물·명승[지형·지질], 명승 Ⅲ』)
『경기도문화재총람-국가지정편』
『북한산 조사연구 자료집』
『북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