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당성(華城 唐城)은 사적 제217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산32번지이다.
남양반도의 서신·송산·마도면의 경계가 교차되는 중심부 가까이에 위치한 해발 165.7m인 구봉산 정상부와 동향한 계곡 및 서남쪽 능선을 에워싼 3중의 성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상에 오르면 서해의 여러 섬들이 그림과 같이 바라다 보인다. 산성의 전체 모양은 남북으로 길다란 장방형에 가까우며, 작은 계곡을 두른 포곡식에 가까운 형식을 취하고 있는 본성이 있고, 서남쪽의 남문 밖으로는 한층 낮아진 능선 대지를 두른 부곽이 이중으로 외성을 이룬다. 뿐만 아니라 이 외곽의 서남쪽 능선을 따라 토루가 계속 이어져 행성을 이루며 보다 서남쪽의 염불산 봉수 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지역은 처음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한때 고구려의 영토로 당성군이라 하였으나,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당항성이라 하고, 서해 바다를 건너 중국과 교통하는 출입구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기록에는 이 산성을 고당성이라 하여 당항성과 관련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신라 하대에는 당성진이 설치되고, 신라의 왕도에서 상주와 삼년산성을 거쳐 이곳에 이르는 길을 당은포로라 하였다. 이 성에는 남문터와 북문터가 정상부 아래의 기슭에 있고, 동문터와 수구터는 계곡 쪽에 있다. 수구터의 안쪽에는 지금도 샘이 있어 물이 사철 나오고, 주변에 건물터가 있다. 서벽에 연한 정상부에는 노목이 우거진 숲이 있고, 여기에 성황당이 있다. 이밖에 망해루로 추정되고 있는 건물지에 초석들이 남아있다.
한편 본성의 서남쪽에 이어진 외성은 성의 서남쪽의 제일 높은 곳에서 한층 낮아진 평탄 대지를 주머니 모양으로 둘러서 본성의 남문을 보호하는 옹성처람 축조한 흔적을 찾을 수 있고, 둘레는 230m이다. 이 외성에서 다시 능선을 따라 낮아지는 곳에도 보다 작은 제2의 외성을 만들어 남문으로 들어가기 위하여는 최소한 2개의 벽을 통과하여야 되도록 특수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제 2의 외성에서 계속 산줄기를 따라 이어진 성벽은 희미하긴 하지만 보다 남쪽의 안부를 지나 계속된다.
성벽은 석축된 벽체가 무너져 마치 토석혼축처럼 보이지만 당초 토축의 성벽이 석축으로 개축되면서 쌓아 올린 석축의 일부가 남벽쪽에서 약간 남아있고, 문터의 좌우와 성벽의 회절처마다 곡성을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자료출처 : 『문화재대관-사적편(개정판,下)』)
『경기문화재총람-국가지정편(1~3)』
『경기문화재대관-국가지정편』
『경기도의 성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