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산사(茝山祠)는 경기도기념물 제30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청성사길 101(가채리 678번지)이다.
이 곳은 항일 투쟁의 선봉장으로 일제에 항거하다 대마도에 유배되어 그 곳에서 서거한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선생과 항일 독립운동가인 염재(念齊) 최면식(崔勉植, 1981~1941)선생의 업적과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이다.
최익현 선생의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庵)이다. 철종(哲宗) 6년(1855) 문과에 급제한 후 장령(掌令) · 동부승지(同副承旨) · 공조참판(工曹參判) · 공조판서(工曹判書) 등을 역임했다. 특히 공조판서로 있을 때 대원군(大院君)을 탄핵하여 실각케 한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1905년(광무9) 일본의 강제적인 을사보호조약 체결에 항거, 전라도 순창에서 의병운동을 일으켰다가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최익현은 대마도로 건너가기 전 부산 앞바다에서 신발에 모래를 채우며 ‘비록 육신은 일본으로 가지만 일본 땅은 밟지 않겠다.’라고 했으며, 유배지에서는 ‘일본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단식을 한 끝에 세상을 떠나 그의 나라를 위한 절개를 엿 볼 수 있다. 후에 지역의 유림들이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사당을 건립했으나 일제 통치시기인 1927년 일본인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해방 후인 1947년 유림에 의해 다시 중건되었고 1975년에 보수가 이루어졌다.
최면식은 최익현의 손자로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18년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광복회의 재건을 위하여 힘썼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사당주위는 담장으로 둘렀으며 입구는 3칸의 솟을삼문으로 꾸몄다. 사당은 이벌대의 기단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평면 규모를 이루고 있는데 정면칸은 개방된 퇴칸으로 이루어졌다. 지붕은 정면과 배면 쪽으로만 면이 구성된 맞배지붕이며 처마는 측면의 박공부에 풍판을 달아 목재 마구리의 부식을 방지했다. 전면은 서까래 위에 각이 진 부연(付椽)을 덧달아 처마를 길게 빼낸 겹처마이고 배면은 서까래로만 이루어진 홑처마이다. 가구는 오량가(五梁架)를 이루고 내부의 중앙에 면암 선생의 위패와 그 옆 배면벽에 길이 2m, 폭 1m의 영정(影幀)이 보존되어 있으나 영정의 시대와 작자는 미상(未詳)이다. 내부 좌측면에는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인 최면식(崔勉植 : 1891∼1944) 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자료출처 : 포천시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포천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문화유적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