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윤관장군묘(坡州 尹瓘將軍墓)는 사적 제323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 930이다.
고려 예종(睿宗) 때 여진족 정벌에 큰 공을 세운 윤관(?~1111) 장군을 모신 유택이다. 윤관은 문종(文宗) 때에 등과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가장 중요한 시기는 숙종(肅宗) 9년(1104) 동북면행영도통(東北面行營都統)이 되어 여진 정벌의 임무를 맡은 때부터 예종 6년(1111) 죽을 때까지 약 7년간이다. 세력이 커진 여진족을 정벌하려고 왕명을 받고 여진과 싸웠으나, 고려군은 여진의 강한 기병(騎兵)에 대부분이 죽고 적진에 함몰되었다. 이에 전투력을 증강하고 기병의 훈련을 진언하여 특수 부대인 별무반(別武班)을 창설했다.
그리하여 예종 2년(1107) 여진과의 전투마다 대승을 거두고 탈환한 각지에 장수를 보내 국토를 확정하고 9성을 축조하였다. 그리고 남도 지방의 이주민들을 이곳에 이주시키고 땅을 개척하도록 하여, 윤관의 9성 설치가 완결되었다. 그러나 여진은 영원히 배반하지 않고 조공을 바친다는 조건으로 성을 돌려받기를 원하였다. 또한 고려의 조정에서도 강화정책을 결정하여 9성 일대의 땅을 다시 여진에게 돌려주게 되었다. 사후 위패는 예종의 사당에 함께 모셔졌고, 고려 태조와 충의공신을 모신 숭의전에서 함께 배향되었다.
본래 윤관장군의 묘는 소재를 모르다가 1764년(영조 40) 윤관의 구비파편(舊碑破片)이 발견된 후 영조가 봉분을 새로 조성하고 치제(致祭)하게 함으로써 윤관의 묘소임이 공인되었다. 장군의 묘역은 최근에 조성된 곡장(曲墻)으로 둘려있고, 봉분은 단분으로 원형의 호석(護石)을 둘렀다. 봉분 좌측에 묘비가 있으며, 앞에는 상석(床石)과 향로석이 있다. 상석의 전방에는 장명등이 있고 상석과 장명등을 중심으로 좌우에 망주석, 동자상, 무인석, 석양(石羊), 석마(石馬) 각 1쌍과 문인석 2쌍이 배열되어 있다. 이들 석물 가운데 오래된 것은 묘비, 호석, 망주석, 문인석 1쌍뿐이고 나머지는 후대에 묘역을 정비하면서 새로 추가, 설치한 것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파주시청 / 『경기문화재총람-국가지정편1』)
『경기문화재대관-국가지정편』
『(우리고장의)문화재총람-지정문화재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