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삼릉(坡州 三陵)은 사적 제205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이다.
파주삼릉에는 공릉(장순왕후)과 순릉(공혜왕후), 영릉(효장세자와 효순왕후)이 모여 있다.
공릉(恭陵)은 조선 제8대 예종(睿宗)의 원비(元妃) 장순왕후(章順王后) 한씨의 능이다. 장순왕후는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의 딸로 1460년(세조6) 16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책봉되어 인성대군(人城大君)을 낳고 이듬해 17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가 1472년(성종 3)에 왕후로 추존되었다.
공릉은 당초 왕후릉이 아닌 세자빈묘로 조성되어 초석, 병풍석과 난간 등이 생략되고 양석과 둘레돌을 둘러 무덤을 보호하게 하였다. 봉분앞에 상석(床石)과 8각의 장명등을 세우고 좌우 양쪽에 문인석 2기를 세웠고 봉분주위로 석마(石馬), 석양(石羊), 석호(石虎) 각각 2필씩을 두어 능 주변을 호위하고 있다. 능 아래에 정자각(丁字閣)과 비각(碑閣), 홍살문이 위치하고 있다. 비(碑)에는 조선국장순왕후공릉(朝鮮國章順王后恭陵)이라 새겨져 있다.
순릉(順陵)은 조선 제9대 성종(成宗)의 원비(元妃)인 공혜왕후(恭惠王后) 한씨의 능이다. 공혜왕후 역시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딸로 공릉의 장순왕후와 서로 자매지간이다. 1467년(세조13) 11세에 가례를 올렸고 성종즉위와 더불어 왕비가 되었으나 성종 즉위 5년(1474년) 4월 슬하에 자식 없이 19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순릉은 무덤 밑둘레에는 12칸의 난간석이 둘러져 있는데, 여기에 표현된 작은 기둥은 건원릉과 태종의 헌릉을 본받은 것으로 조선 초기 무덤에 쓰인 석물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봉분앞에 상석과 8각의 장명등을 배치하고 양쪽으로 문인석과 망주석 2기를 두었다. 또 석양(石羊), 석호(石虎) 각각 2필씩을 두어 능 주위를 호위케 하고 있다. 능 아래에 정자각(丁字閣), 비각(碑閣), 홍살문이 위치하고 있다. 비에는 조선국공혜왕후순릉(朝鮮國恭惠王后順陵)이라 새겨져 있다.
영릉(永陵)은 조선 제21대 영조(英祖)의 맏아들인 효장세자(孝章世子) 진종(眞宗·추존)과 그 비(妃) 효순왕후(孝純王后) 조씨(趙氏)의 능이다. 진종은 1719년(숙종 45)에 태어나 1724년 영조 즉위와 더불어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728년 춘추 10세의 나이로 돌아가 시호를 효장이라 하였다. 1762년 영조는 둘째아들인 사도세자(思悼世子)를 폐위한 뒤 사도세자의 아들인 왕세손(훗날 正祖)을 효장의 아들로 입적시켰다. 효장은 정조 즉위 후 영조의 유언에 따라 진종으로 추존되었고 능호도 올려 영릉(永陵)이라 하였다. 효순왕후 조씨는 풍릉부원군(豊陵府院君) 조문명(趙文命)의 딸로 1727년 13세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다음해에 세자의 죽음으로 홀로 되었다가 1751년 춘추 37세로 돌아가 효장세자와 함께 왕후로 추존되었다.
영릉은 왕릉과 왕비릉을 쌍릉으로 하여 2기의 상석을 앞에 놓았으며 그 중간에 사각옥형의 장명등을 배치하고 문인석 2기와 석양(石羊)·석호(石虎)를 각각 2필씩 배치해 능 주위를 호위케 하였다. 능 아래에는 영조의 명에 의해 옛날 방식으로 세운 정자각(丁字閣)이 있고 비각(碑閣)과 홍살문이 위치하고 있다.
(자료출처 : 파주시청)
『(역사의 숲) 조선왕릉)』
『파주자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