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화선생묘(李世華先生墓)는 경기도기념물 제60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장승배기로61번길 52-27이다.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자 청백리의 한 사람이던 쌍백당(雙栢堂) 이세화(1630∼1701) 선생의 묘소이다. 본관은 부평(富平), 자는 군실(君實), 호는 쌍백당(雙栢堂),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병조정랑 계록(繼祿)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통덕랑 이재(以載)이다. 큰아버지 장릉참봉 희재(熙載)의 양자로 들어갔다. 효종 8년(1657)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 · 장령(掌令) 등을 거쳐 평안도, 황해도, 전라도 관찰사를 지냈다.
숙종 15년(1689)에 인현왕후를 폐(廢)한다는 소식을 듣고 상소를 올려 반대를 하다가 정주로 유배되었다. 숙종 20년(1694) 갑술환국 후 대사간(大司諫),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제수된 것은 거절하였으나, 뒤에 인현왕후의 복위 문제를 맡으며 다시 조정에 올라왔다. 그 뒤 의금부사(義禁府事) 겸 지경연사(知經筵事), 세자빈객(世子賓客)에 오르고 청백리로 선정되었다. 이후 공조, 형조, 병조, 예조, 이조판서를 두루 역임하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재임시 세상을 떠났다. 이에 조정에서는 충신의 상징인 정문(旌門)을 고향에 세우고 영의정의 관직을 내렸다. 저서로는 『쌍백당집』이 있고 풍계(豊溪)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한편 그는 현종(顯宗) 13년(1672) 남한산성내에 식수(食水)를 보관하였다가 전시에 사용하려고 지수당(池水堂)을 건립하고 못을 팠다.
묘역은 사성(沙城)으로 둘러져 있고, 묘는 부인 순창 설시와 합장하여 2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봉분의 중앙 앞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이 서로 가깝게 배치되어 있고, 그 아래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이 한 쌍씩 놓여 있다. 묘소의 진입로에는 신도비(神道碑,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는데 팔작지붕형 가첨석(加檐石), 비신(碑身), 기대(基臺)로 구성되어 있다. 비문은 남구만이 글을 짓고 오태주가 글씨를 썼으며, 최석정이 머리글을 써서 숙종 34년(1708)에 건립한 것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파주시청 / 경기문화포털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문화재안내문안집.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