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함묘및신도비(金德諴墓및神道碑)는 경기도기념물 제144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무건리 산1번지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성옹(醒翁) 김덕함(1562∼1636) 선생의 묘소이다.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경화(景和), 호는 성옹(醒翁), 시호는 충정(忠貞)으로 이조참판을 지낸 김홍(金洪)의 아들이다. 선생은 어릴 때 부모를 잃었으나 스스로 학문에 힘써 선조 21년(1588)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초토사 이정임을 도와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을 조달하는 일을 맡았다.
선조 27년(1594) 군공청(軍功廳)이 세워지자 도청(都廳)이 되어 공을 세웠다. 이후 내·외직을 거쳐 광해군때 군기시정(軍器寺正)에 이르렀다. 광해군 9년(16179)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에 대한 폐모론(廢母論)이 일자 이항복(李恒福, 1556~1618), 정홍익(鄭弘翼, 1571~1626)과 함께 반대하다가 남해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집의(執義)가 되고 참의(參議)를 거쳐 부제학(副提學), 대사성(大司成),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했다.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에 호소사(號召使), 난이 끝난 뒤 여주목사(牧使), 춘천부사(府使) 등을 역임하고 인조 14년(1636) 청백리에 선정되고 대사헌(大司憲)에 올랐다.
묘역은 낮은 사성(沙城)으로 둘러져 있고 봉분은 단분으로 부인 경주이씨와의 합장묘이다. 봉분 우측에 구비와 신비가 세워져 있고, 봉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다. 상석 앞에는 좌우로 망주석과 문인석이 1쌍씩 배열되어 있다.
묘 아래쪽에는 신도비(神道碑,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앞에 세우던 비)가 세워져 있는데, 팔작지붕형 가첨석(加檐石), 비신(碑身), 비석을 받치는 기대(基臺), 전체를 받치는 하부 구조인 대좌(臺座)가 설치되어 있다. 비문은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찬(撰)하고,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이 전액(篆額)을 쓰고, 증손 김유(金濡)가 글을 써서 숙종 12년(1686)에 건립한 것이다. 이 묘역은 두 번의 이장을 거쳐 현종 원년(1660)에 현 위치에 조성되었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파주시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문화재안내문안집. 1』
『파주자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