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고택(金左根古宅)은 경기도민속문화재 제12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이천시 청백리로393번길 100-131이다.
조선 23대 순조 비(妃) 순원왕후의 오빠로 철종때 예조판서·형조판서·호조판서·훈련대장 등 고위직을 역임하였으며 영의정을 세 번씩이나 지내 하옥 김좌근(金左根, 1797~1869)의 별장이라 전해지는 집이다. 이 집은 영의정 김좌근의 아들이며 고종 때 어영대장과 이조판서를 지낸 김병기가 부친의 묘지관리를 겸한 별장용으로 지은 건물로 알려져 있다.
이 집은 원래 99칸 규모였다고 전하는데 지금은 다른 부속건물들이 다 없어지고 안채 1동과 별당 1동만 남아있다. 당시 구조는 대문간과 중문간을 지나 안채로 통하게 되어 있었는데, 중문간과 연결된 사랑채가 안채를 ㄷ자형으로 둘러싸고 있었으며 그 바깥쪽에 대문간과 연결된 행랑채가 ㄱ자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고 한다. 안채 오른쪽에는 별당(別堂)이 있는데 지금은 안채와 별채가 서로 떨어져 독립된 두 개의 건물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두 건물 사이에서도 가로막힌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 뒤쪽에 널마루로 짠 회랑을 달아서 왕래하기 편하도록 서로 연결하였다.
안채는 일(ㅡ)자형 평면인데 전면에 분합문이 달린 4칸 대청 좌우에 3칸씩의 안방과 건너방이 있고 앞뒤쪽에는 툇마루가 가설되어 있다. 안방의 북쪽에는 윗방이 있고 왼쪽으로 4칸 반 부엌이 이어져 있는데, 안방과 부엌 사이에는 상부에 벽장이 가설되어 있고 부엌 남서쪽 모서리에는 살강이 설치되어 있다. 부엌 입구에는 판문이 달리고 환기를 위한 살창이 시설되어 있다. 안방과 부엌의 북쪽 부분은 후대에 덧달아낸 것으로 판단된다. 건너방 오른쪽에도 1칸 반의 부엌이 있다. 구조는 전후퇴(前後退) 방식이고 지붕은 팔작 형식이며 기단은 잘 다듬은 장대석으로 마감하였다.
별당은 안사랑채의 기능인데 전체적인 평면은 을(乙)자형을 이루고 있다. 중앙에는 사분합문이 달린 3칸 대청이 있고 그 왼쪽에는 전면에 청방(廳房)이 달린 2칸 반 온돌방, 3칸 부엌이 연이어 있으며 대청 오른쪽에는 2칸 온돌방 앞으로 1칸 누마루가 위치하였다. 누마루는 3면에 분합문을 달아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고 기단은 장대석으로 마감하였는데 누마루 아래에는 높다란 방형 석주(石柱)를 세웠다.
회랑은 없어졌지만 별채 뒷면을 돌아가며 둘러싼 쪽마루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마당에 흙을 밟지 않고서도 안채와 별채 사이를 편하게 왕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안채는 서쪽부터 부엌과 다락, 3개의 방과 곳간으로 이루어진 팔작지붕의 일자집이다. 부엌은 3칸 규모로 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퇴를 달았고 오른쪽에 다락이 있다. 3개의 방 전면에는 3칸 정도의 대청마루가 있다.
기둥과 서까래와 대들보는 물론이고 마루와 각종 문틀이며 문살 하나에 이르기까지 잘 다듬어져서 소홀한 구석이 없고 기둥을 받친 주춧돌과 섬돌, 건물을 둘러싼 기단석들도 반듯하게 잘 다듬어져 정갈한 인상을 준다. 집 앞으로는 연못을 파서 인공섬으로 만들었는데, 주민들이 시멘트 구조물로 된 정자를 지어 휴식처로 사용하고 있다. 별채를 둘러싼 담장을 야트막하게 하여 다락에 오르면 담장 너머로 연못과 툭 터진 조망을 감상할 수 있는데 우리 선조들의 여유와 풍류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 가옥은 십 수 년 전까지만 해도 복판에 높다란 솟을대문과 사랑채, 행랑채가 두 겹으로 안채를 싼 규모 있는 사대부집 전통가옥의 모습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었으나, 후손들이 덩치가 큰 건물을 관리하기가 벅차다는 이유로 당시 신흥재벌에 건물을 팔아 넘겼다. 사랑채와 행랑채를 뜯어 옮기던 도중 회사가 부도로 건물 이전이 중단되어 그나마 지금의 모습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가옥의 일부가 없어진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안사랑채인 별당을 둔 점, 대청 전면에 분합문(分閤門)을 갖추고 방과 마루의 앞뒤에 툇마루를 둔 전후퇴 또는 전퇴 방식의 구조, 치목에 있어서 용재(用材)가 넉넉하고 주칸도 넓으며 결구(結構)가 견고한 점은 조선후기 권문세가 주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료출처 : 이천시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문화유적분포지도-이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