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향교(利川鄕校)는 경기도문화재자료 제22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이천시 향교로1이다.
이천향교는 조선 태종 2년(1402)에 처음 지어졌다. 양촌(陽村) 권근(權近)이 지은 <이천신치향교기(利川新置鄕校記)>에 의하면 신사년(1401) 봄 감무로 부임해 온 변인달이 지금의 안흥동에 있던 안흥정사(安興精舍)에서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고, 절을 학교로 만들 수 없다고 하여 자신이 직접 향교를 세울 자리를 물색하던 중 지금의 위치에 터를 잡으니,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지점으로 여러 산으로 들러 싸여 형세가 그림과 같았다고 한다. 공무(公務)의 여가에 백성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감독하니, 임오년 7월에 시작하여 8월 상정(上丁)에 석전(釋奠)의 예를 봉행(奉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조선 후기에 숙종 44년(1718)과 헌종 12년(1846)에 중수되었다. 특히 동무는 1967년, 서무는 1980년에 새로 지었고 1991년과 1993년에는 명륜당과 담장을 수리하였다.
이천향교는 주택가 뒤 야산 기슭의 급한 경사지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지의 아래쪽 터에는 명륜당이 있고 중간에는 삼문(三門)과 교직사가 있으며 위쪽 터에는 대성전(大成殿)과 동·서무가 위치하고 있어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명륜당이 대성전의 주축에서 벗어나 동쪽에 치우쳐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 반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부리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이다. 자연암반 위에 가공한 석재를 잘 짜 맞추어 석축을 쌓았고 그 위에 낮은 기단에 세워진 민흘림기둥에 초익공이 결구되고 오량(五樑)의 지붕 가구가 짜 올려져 있다. 대성전 내부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대성전 앞쪽 좌우에 있는 동무와 서무는 각각 앞면 3칸, 옆면 1칸 크기의 민도리 맞배지붕으로, 형태와 구조가 서로 비슷하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익공양식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내부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다.
이 향교는 주변 지형의 구조를 적절히 이용한 배치가 돋보이는 조선 후기의 향교로 현재는 제사 기능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현재 1945년 5월에 조직된 이천시 유도회에서 관리해 오고 있는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는 이천 지역의 유림들이 이곳에 모여 석전제(釋奠祭)를 연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이천시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
『문화재안내문안집. 1』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