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사지(松山祠址)는 경기도기념물 제42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로 296이다.
송산사터는 조선의 개국에 참여하지 않고 고려 왕조와의 절개를 지킨 조견, 원선, 이중인, 김양남, 유천, 김주 등 여섯 분의 뜻을 기리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당이 있던 터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조견, 정구, 원선, 세 분은 “충신은 두 나라의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충절을 내세워 태조 이성계의 끈질긴 권고를 끝내 물리치고, 이곳 송산동 삼귀마을에 들어와 숨어 살았다. 조견의 호가 ‘송산’이기 때문에 송산동은 그의 호를 따서 지어진 이름이며, 조견, 정구, 원선 세 분이 먼저 들어온 마을이라 하여 ‘삼귀마을’이 됐다. 그 후 조선 정조 22년(1798)에 사당이 건립되었고 사당을 ‘삼귀서사(三歸書社)’라 하였는데, 순조 3년(1803)에 ‘송산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듬해에는 서재(西齋)가 건립되었고 순조 29년(1829)에는 서원의 강학규식(講學規式)이 갖추어졌다. 그러나 고종 5년 (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건물은 헐려 없어졌고, 1892년 옛터 위에 여섯 분의 위패가 모셔진 단이 마련되었다.
1995년의 발굴조사 결과 재실의 남쪽에서 사당터가 확인되었다. 사당터는 북향으로 자리잡고 있어 고려의 왕도인 개성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있었으나 건물 앞뒤쪽의 장대석(長臺石) 기단 석축과 초석(楚石), 적심(積心), 내부 바닥의 잡석다짐, 담장터 등이 노출되어 그 규모와 구조가 밝혀졌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에서 보면 사람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앞면에 개방된 툇간이 있으며 옆면과 뒷면에는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의정부시청 / 의정부문화원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문화재 안내문안집. 1』
『의정부지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