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선생묘(申叔舟先生墓)는 경기도기념물 제88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로163번길 34-39이다.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며 문신이었던 보한재(保閑齋) 신숙주(1417∼1475) 선생의 묘이다. 세종 20년 (1438)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여 동시에 생원ㆍ진사가 되었다. 이듬해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하고, 세종 25년(1443) 통신사(通信士) 변효문(卞孝文, 1396~?)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일본에 가서 시명(詩名)을 떨치고 귀국 도중 대마도에 들러 계해약조(癸亥約條)를 체결하였다. 이후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참가하여 큰 공적을 세웠다. 중국 음을 훈민정음인 한글로 표기하려고 왕명으로 성삼문(成三問, 1418~1456)과 함께 유배 중이던 명나라 황찬(黃瓚)의 도움을 얻기 위해 요동을 13차례나 내왕하였다. 이 때 언어학자인 황찬은 그의 뛰어난 이해력에 감탄하였다고 한다. 세조와는 이전부터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계유정난 과정에서도 세조에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특히 그는 뛰어난 학식과 글재주로 여섯 분의 왕을 섬기면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동국정운(東國正韻)』, 『세조실록(世祖實錄)』, 『예종실록(睿宗實錄)』을 비롯한 많은 편찬 사업에 참여하는 등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봉분은 쌍분이며 무송군부인(茂松郡夫人) 윤씨와의 합장묘이다. 쌍분의 중앙 앞에는 1897년에 건립한 묘비가 있으며, 봉분 앞에는 각각 상석과 향로석, 그 앞에 장명등이 1기씩 배치되어 있다. 묘역의 좌우에는 문인석 2쌍이 배치되어 있다. 묘역의 하단 우측에는 이승소(李承召, 1422~1484)가 글을 지어 성종 8년(1477)에 건립한 신도비(神道碑)가 있고, 묘역의 하단 좌측에는 1917년 중건된 신도비가 있으며, 하단 중앙에는 1971년 한글학회에서 세운 한글창제사적비가 위치하고 있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문화재안내문안집.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