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무장군묘(李從茂將軍墓)는 경기도기념물 제25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79번지이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명장인 이종무(1360∼1425) 장군의 묘소이다.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던 장군은 고려 우왕 7년(1381) 20살의 젊은 나이로 아버지와 함께 전쟁터로 나가서 왜구를 격파하고 그 공으로 벼슬자리에 올랐다. 조선 태조 6년(1397) 서해안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쳐 상장군에 올랐으며, 정종 2년(1400) 제2차 왕자의 난 때 방간(芳幹)의 군사를 무찔러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으로 통원군(通原君)에 봉해졌다. 그 후 좌·우군총제(左·右軍摠制)를 거쳐 남양, 수원 등지의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중군도총제(中軍都摠制)를 역임하였다.
세종 1년(1419) 왜구의 침입이 더욱 심해지자 조정에서는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섬(대마도)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장군은 전함 227척, 군사 1700여 명을 거느리고 쓰시마섬을 공략해 적선 129척을 소각하고 가호 1,940여 호를 소각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또 도주하는 대마도 도주(島主)를 일본 구주(九州) 본토까지 추격하여 항복을 받는 큰 공적을 올렸다. 쓰시마섬은 우리나라와 거리가 제일 가까운 일본의 영토로, 이종무에 의해 한때나마 우리 나라의 땅이 될 수 있었으며 우리나라의 국력을 과시한 일이 되었다. 세종 3년(1421) 부원군에 진봉되었으며 다음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봉분의 앞면과 좌우면에는 직사각형의 돌을 둘렀고, 봉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다. 양 옆으로는 문인석 1쌍이 배열되어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후대에 새로 세운 묘비가 서 있다. 그러나 처음에 건립되었다는 신도비와 재실은 현존하지 않는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경기문화포털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문화재 안내문안집. 1』
『용인시 문화재 총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