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애이자묘역(陰崖李耔墓域)은 경기도기념물 제172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삼로201번길 31-15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음애(陰崖) 이자(1480∼1533)의 묘소이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이다. 연산군 7년(1501) 사마시를 거쳐 문과에 급제한 뒤 사헌부 감찰을 지내고,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으나, 연산군의 어지러운 정치로 사직했다. 중종반정 이후 다시 관직에 기용되어 1518년 종계변무주청부사(宗系辨誣奏請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한성판윤 겸 경연관에 올랐다. 그러나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己卯士禍)를 당하여 파직되자 용인, 음성, 충주 등지에 퇴거하여 학문을 닦으며 여생을 보냈다. 사후 의정부 좌찬성에 증직되고 문의(文懿)란 시호가 내려졌다. 저서로는 『음애집(陰崖集)』, 『음애일록(陰崖日記)』등이 있다.
이자의 묘역은 쌍분으로 초취(初娶) 의령남씨(宜寧南氏)와 후취(後娶) 인천채씨(仁川蔡氏)가 부장되어 있는 삼위합장묘(三位合葬墓)이다. 같은 산줄기에는 이자 묘역을 비롯하여 이자의 아버지인 이예견(李禮堅, 1436~1510), 형인 이운(李耘, 1469~?), 아들인 이추(李秋) 묘역 등 많은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봉분과 석물(石物)이 잘 갖추어져 있고 외형상 비슷하다.
이자 묘역의 석물로는 묘비, 문인석 2기, 상석, 향로석 각 1기가 있다. 묘비는 팔작지붕형 옥개석(屋蓋石), 비신(碑身), 비좌(碑座)로 구성되어 있다. 문인석은 양관(梁冠)에 조복(朝服)을 입고 홀(笏)을 들고 있는 형상으로 인체의 비례가 안정되고, 안면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봉분 아래쪽에는 화강암질인 4매의 장대석이 있는데, 혼백이 드나드는 문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용인시 문화재 총람』
『용인시의 역사와 문화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