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 조사당(驪州 神勒寺 祖師堂)은 보물 제180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이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창건되었고 나옹화상(懶翁和尙, 1320~1376)이 이곳에서 입적한 후 고려 우왕(禑王) 2년(1376)에 크게 중창되었던 유서 깊은 고찰(古刹)이다. 영릉(英陵)이 여주로 이장된 조선 예종(睿宗) 원년(1469)부터 왕실에서 신륵사를 원찰(願刹)로 삼았고, 성종(成宗) 3년(1472)부터 대규모 중창이 이루어져 이듬해 보은사(報恩寺)라 개칭되었다.
조사당은 고려 말에 창건되어 조선 초에 중건되었는데 현재의 건물은 현종(顯宗) 12년(1671)에 중수된 것이다. 조사당은 사찰 중심에서 서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별도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정면 1칸, 측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집인데 몸체에 비해 지붕이 크고 추녀가 많이 올라가 있어 균형잡힌 외관을 보여주고 있다. 낮은 장대석(長臺石) 기단에 주좌(柱座)가 있는 정형 초석(礎石)이 놓이고 민흘림기둥에 공포(栱包)가 결구되어 오량(五梁)의 지붕가구가 짜 올려져 있다. 대들보 위에 가로재가 정(井)자형으로 놓이고 동자주(童子柱)가 세워져 마루도리가 올려져 있는데 이러한 구조가 우물반자에 가리어 보이지 않는 점이 특이하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뒷벽 쪽에 불단(佛壇)이 설치되었으며 그 위에는 고려말의 고승(高僧)인 지공(指空, ?~1363)·나옹·무학대사(無學大師, 1327~1405) 세 분의 영정(影幀)이 봉안되어 있다.
이 불전은 규모가 매우 작으나 특이한 공포의 형태와 가구 수법을 보여주고 있는 조선 중기의 건축이다.
(자료출처 : 『경기문화재총람-국가지정편2』)
『경기문화재대관-국가지정편』
『여주군 문화유적 지도-지정문화재편』
-
여주 신륵사 조사당.pdf (168.2 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