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驪州 神勒寺 普濟尊者石鍾)은 보물 제228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이다.
신륵사 조사당 북쪽 언덕에 있는 보제존자 나옹화상의 사리를 봉안한 석종형 승탑이다. 고려 말기의 고승 나옹화상은 양주 회암사에 머무르다 갑작스럽게 왕명을 받고 밀양 영원사로 떠나게 되었다. 나옹선사는 떠나기 전에 회암사를 중수하고 낙성회를 열었는데, 이 때 귀천을 가리지 않고 비단과 곡식을 가져다 공양하는 여인네들이 몰려들어 생업을 포기할 정도였다. 왕실에서는 이를 문제삼아 나옹선사에게 밀양 영원사로 한시 바삐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 왕명으로 길을 나서기는 했지만 나옹선사는 병이 깊은 상태였기에 신륵사에 이르러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머물게 되고 결국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신륵사에 나옹선사의 석종형 승탑이 세워지게 된 것은 이러한 나옹화상의 입적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고요한 소나무 숲 속에 안치된 사리탑 앞에는 석등이 세워져 있고 선사의 생적을 기록한 석종비는 뒤쪽에 세워져 있어 석등, 승탑, 탑비 등 3조의 묘탑상설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고려 말기에 불교를 중흥하고 조선 초기에 불교의 기반을 다진 고승으로 2천여 명의 제자를 배출했던 나옹화상의 묘역은 정성과 공력을 들여 마련된 흔적이 짙다.
고려 우왕 5년(1379)에 완성된 이 승탑은 종의 모습을 닮아서 석종이라 불린다. 네모난 형태의 높고 넓은 기단에는 사방에서 기단 위로 오르는 층계가 마련되었으며, 기단 위에 넓고 얇은 돌을 깔고 그 중앙부에 2단의 받침대를 놓은 뒤 탑신을 안치하였다. 이처럼 이 사리탑은 기단의 모습부터 장중함을 느낄 수 있다. 이간 뒤의 놓인 탑신은 당당한 규모에 위로 올라가면서 윤곽선이 완만한 종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 타원형을 이루는데, 어깨 부분에서 수평으로 꺾이고 꼭대기 한 가운데에 큼지막한 화염보주를 장식하였다. 이 보주는 불꽃에 싸인 모양으로 조형성이 매우 뛰어남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석종형 승탑이나 사리탑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고려 말기에 새롭게 수용된 사리탑 양식으로 이는 멀리는 인도의 복발형 불탑에 뿌리를 두고 있다. 훗날 티벳을 주심으로 유행한 라마탑에서 새로운 양식으로 진전되고 이러한 양식이 좀 더 간소화되어 고려 말기에 우리나라에 수용되었다. 고려 말기에 화장사 지공선사탑에서 첫선을 보였는데 그의 제자였던 나옹화상의 승탑에서는 탑신이 아예 종 모양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훨씬 간략한 형태로 보편화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자료출처 : 『문화재대관(보물편·석조1, 개정판)』)
『경기문화재대관-국가지정편』
『문화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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