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장군묘(徐熙將軍墓)는 경기도기념물 제36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 후리 산53-1번지이다.
고려 초기의 외교가이며 문신인 장위공 서희(942∼998)의 묘소이다. 서희는 광종(光宗) 11년(960) 18세에 갑과(甲科)로 과거에 급제한 뒤 내의시랑(內議侍郞)을 거쳐 성종(成宗) 2년(983)에는 군정의 책임을 맡은 병관어사(兵官御事)가 되었다. 이후 태보(太保)·내사령(內史令)의 최고직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정치적 활동에서도 중책을 맡았으나 외교적으로 보다 큰 업적을 올렸다.
고려의 적극적인 북진 정책과 친송외교(親宋外交)에 불안을 느낀 거란이 성종 12년(993)에 소손녕(蕭遜寧)을 총수로 한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였다. 적은 북쪽 경계의 붕산군을 격파하고 계속 남쪽을 위협하였다. 이에 고려에서는 항복하자는 견해와 서경(西京) 이북의 땅을 떼어 주고 화해하자는 할지론(割地論)이 우세하였다. 이에 서희는 단신으로 적진에 가서 소손녕과의 담판으로 유혈의 전투 없이 적의 80만 대군을 물러가게 했다. 그후 청천강 이북에 있던 여진족을 토벌하고 강동 6주를 설치하여 평안북도 일대의 땅을 확보하였다. 고려 성종 묘정(廟庭)에 제향되고 덕종 때 태사(太師)에 추증(追贈)되었다. 시호는 장위(章威)다.
그의 묘는 부인의 묘와 같이 있는 합장묘이고, 봉분 아래에 2단의 둘레석을 두른 형태이다. 쌍분의 가운데에 묘비가 서 있고, 상석과 장명등(長明燈:무덤앞에 있는 돌로 만든 등)이 1기씩 놓여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이 각 1쌍씩 있다. 묘역은 전체적으로 3단으로 되어 있어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경기문화포털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