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지평리삼층석탑(楊平砥平理三層石塔)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80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지평의병로 107(지평리 502-2번지)이다.
이 석탑은 양평군 지제면 지평리 지제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다. 현재 구체적인 출토 위치가 전하지는 않지만 인근에 있었던 사지에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탑의 부재는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는 탑신석 1개와 옥개석 2개만 남은 것을 새로이 조립하면서 2층․3층 탑신석은 새로 만들어 넣었다. 그리고 3층 옥개석 위에는 부도의 상륜부로 추정되는 팔각노반석이 놓여 있다.
탑신부는 옥개석의 체감율이 잘 어울리고, 각 부의 치석 수법이 상통하고 있다. 또한 1층 탑신석의 상부는 옥개석의 제일 밑부분 받침부와 너비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같은 석탑의 부재임을 알 수 있다. 1층 탑신석은 각 면 좌우측에 우주를 세우고, 그 안에 각 1구(軀)씩 높게 돋을새김된 여래상을 조각한 사방불(四方佛) 탑신석이다. 사방불 탑신석은 옮겨 세워졌기 때문에 방위에 따른 여래상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든 상태이다.
각 면에 조각된 여래상들은 모두 앙련의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으며 머리 부분에는 두광을 표현하였다. 육계(肉髻)가 있고 머리는 나발(螺髮)로 표현되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 표시가 있는 등 전체적으로 동일한 조각 기법을 보이고 있지만 수인은 모두 다르다. 현재의 위치를 기준으로 남쪽면의 여래상은 왼손은 내려 단전 부근에 두었고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어올렸는데 손에 지물을 지녔다. 서쪽면의 여래상은 남쪽면과 손가짐은 같으나 지물을 들지 않았다. 북쪽면의 여래상은 왼손은 단전에 두고 오른손은 무릎에 두고 있는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표현한 것으로 판단된다. 동쪽면의 여래상은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들어 가슴께에 두고 있다. 사방불의 양식은 진전사지 삼층석탑이나 청주 탑동 석탑의 사방불 등과 닮았다. 특히 여래상들은 앙련대좌와 자세, 옷주름, 두광, 상호의 표현 등에서 청주 탑동 사방불과 강한 친연성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그리고 옥개석은 동일석으로 치석되었는데, 각 층이 규모가 작아지면서 동일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옥개받침은 4단으로 마련하였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도록 하였다. 처마와 낙수면이 만나는 지점은 각이 넓어지도록 하였으며 전각부는 마루 끝에서 살짝 치켜 올리고 있다. 낙수면은 경사지게 처마 쪽으로 내려가면서 약하게 곡선을 이루도록 하였다. 옥개석 상부에는 각형 2단으로 낮게 괴임을 두어 상부에 놓이는 탑신석을 받치도록 하였다. 상륜부는 사각형의 받침과 보개(寶蓋)로 보이는 석재가 올려져있다.
이 석탑의 크기를 보면, 1층 탑신석은 길이 70cm, 높이 65cm이고, 1층 옥개석은 길이 100cm, 높이 31cm, 2층 옥개석은 길이 93cm, 높이 29cm이다.
이 석탑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1층 탑신석에 조각된 사방불이다. 현재 기단부가 남아있지 않아 석탑의 건립 시기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사방불이 통일신라 말기에 조각된 사방불들과 강한 친연성을 보이고 있는 점은 주목된다. 그리고 옥개석도 통일신라 말기에 건립된 석탑을 계승하여 고려 초기에 건립된 석탑들과 강한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이 석탑은 통일신라 말기보다는 고려 초기인 10세기경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석탑은 경기도 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사방불 탑신석을 결구한 삼층석탑이라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석탑이라 할 수 있다.
(자료출처 : 양평문화원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양평군지』
『경기도불적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