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용문사 은행나무(楊平 龍門寺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6-1번지 이다.
이 나무는 수령이 1100년으로 추정되며 현재 우리나라에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크기는 높이 41m, 가슴높이 줄기둘레 14m, 수관 폭이 동서방향 28m, 남북방향 28m정도 이다. 줄기는 지상 약 12m 높이에서 3갈래로 갈라졌고 줄기 아래쪽에 혹과 같은 큰 돌기가 나 있다. 이 나무의 높이에 대해서는 63.6m(1919년), 60m(1962년), 67m(2000년) 등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자료들이 있으나 최근의 자료에는 41m(광파기 측정)로 나타나 있다. 이는 물론 나무의 키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그 간의 측정치들이 부정확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거수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수세가 나쁘지 않은 편이어서 결실도 잘 된다고 한다. 물론 한창 때의 결실량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요즈음도 약 2~3가마 정도는 된다는 것이 사찰측의 이야기다.
나무는 용문사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있다. 나무의 아래쪽 경사지에 석축을 쌓아 생육공간을 확보하기는 했으나 나무의 크기를 고려한다면 충분한 생육공간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주변에 이 은행나무와 경합할 만한 큰 나무가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가까이에 계류가 흐르는 입지 특성상 줄기의 수피에는 이끼류와 양치류 등이 많이 부착해 있다.
이 나무에는 관련 전설이 많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이 그의 스승인 대경 대사를 찾아와서 심은 것이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였던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망국의 서러움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손수 심었다고도 하고, 역시 신라의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나서 이 은행나무가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한편, 정미의병(丁未義兵)이 발발했을 때 일본군이 절에 불을 질렀으나 이 은행나무만은 해를 면했다고 전해지며, 은행나무는 이때부터 화재로 소실된 사천왕전(四天王殿)을 대신하는 천왕목(天王木)의 역할을 해 오고 있다고도 한다. 조선조 세종 때에는 이 나무에 정삼품(正三品)이상의 품계에 해당하는 당상직첩(堂上職牒)의 벼슬이 주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 나무의 또 다른 이야기로는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을 때 톱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이 일어났기 때문에 중지하였다 한다. 또한,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에는 이 나무가 큰 소리를 내어 이를 알렸다고 하는데, 고종(高宗)께서 승하하였을 때에는 큰 가지 하나가 부러졌고, 8.15해방과 6.25전쟁 때에도 이 나무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자료출처 : 양평문화원 / 『문화재대관-천연기념물·명승[식물] Ⅱ』)
『문화재안내문안집. 2』
『(경기도 역사와 문화) 백문백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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