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창대리 고가(楊平 倉垈里 古家)는 경기도민속문화재 제7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충신로 333-6(창대리 203-7번지)이다.
이 집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인 조선 후기 경기도 지방의 전형적인 농촌 중류 가옥의 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건물이다. 작은 언덕을 뒤로 하고 앞으로 넓게 트인 농경지를 바라보며 동남향으로 좌향(坐向)하여 집이 서 있다. 집의 전체적인 모습은 튼 口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는데 ㄱ자형의 안채는 안방이 정남향을 하고 대청마루는 안방과 직각으로 꺾여 있다. 안방의 아래로는 부엌 2칸이 있고 대청의 좌측으로는 건넌방이 있으며 그 옆에 헛간이 딸려 있다. 안방, 대청. 그리고 건넌방까지는 모두 전면에 툇마루가 있는데 툇마루가 직각으로 꺾이면서 각 방을 연결하고 있어 다른 가옥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예라 할 수 있다. 구조는 일고주오량(一高柱五樑)으로 안채 건넌방쪽 지붕의 박공 부분은 기와편을 중간 중간에 넣어 쌓고, 줄눈을 넣어 아름답게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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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내용 출처 : 양평문화원
가옥의 건립연대는 18세기 말로 추정된다. 가옥의 입지는 창대리(倉垈里)를 둘러싼 산줄기의 서쪽 사면에 동향으로 자리하였고, 이 마을 집들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 창대리는 현재 전체 가옥수가 40호 정도 있는 작은 규모의 각성바지 마을로 이씨와 박씨가 그중 많다. 마을 이름 중의 ‘창(倉)’자는 조선시대, 지방에서 올라오는 곡식들이 한양 도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마을에 일시로 보관한 ‘창’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한 것이라 전한다. 이 가옥은 조선시대 벼슬을 한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지었는데 당시 이 집은 이 지역의 모든 전답을 관리하고 조세를 거두어들인 세력가였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의 풍수형국이 와우형(臥牛形)이고, 이 집터가 소의 배에 해당한다고 하여 예로부터 명당으로 인식해 왔다. 현재 정법사(正法寺)라는 사찰로 이용되고 있는데, 1995년에 사찰로 개조되었으며, 같은 해에 문화재관리국에서 퇴락한 사랑채를 보수하는 공사를 하였다.
가옥의 배치는 가로로 긴 장방형 대지에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마주한 튼‘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의 대청은 동향을 하고 있으며, 사랑채와 대문 역시 동향을 하고 있다. 안채의 안방과 부엌 후면으로는 널찍한 뒤란 공간이 펼쳐져있고, 뒤란 끝에 3칸 광채가 있다. 대문 밖으로 바깥마당이 형성되었는데, 경기도 지방의 여느 집들과 마찬가지로 담장 없이 마을길과 바로 이어지지만 한 길 이상 되는 높이의 단을 조성하여 가옥의 위엄을 밖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다. 높은 단은 자연스럽게 마을길과의 영역을 구분하게 된다.
안채는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건너방과 부엌이 각 1칸씩 이어지고, 우측에 1칸 웃방, 2칸 안방이 있으며, 안방에서 부엌이 전면으로 돌출되어 있다. 안마당에 면한 안채의 전면은 퇴칸으로 형성되었다. 현재 대청은 불상을 모셔두고 예불을 올리는 법당으로 이용하고 있다. 경기도내 양평 지역 민가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웃방과 안방의 구분이 명확히 남아있으며, 두 방 사이에 외짝 여닫이문을 달아 내왕하도록 하였다. 안방 후면은 뒤란에 면하여 쪽마루를 놓았는데 이를 통하여 안방에서의 뒤란 출입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이 쪽마루에는 단부에 기둥을 세워 마치 툇마루처럼 보이지만 이 기둥은 구조적 역할을 하지 않는다. 안채의 가구는 오량구조이고,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박공지붕이다. 전체적으로 부재의 치목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단면도 견실하다. 안채의 기단은 장대석 외벌대로 되었고, 초석은 방형으로 다듬은 화강석이 사용되었다.
바깥채는 제일 위쪽의 6칸 규모의 사랑채와 그 아래의 행랑채로 구성되는데, 외관상 하나의 건물로 이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구조나 칸살은 서로 독립되어 있다. 두 채가 만나는 부분에는 사랑방에서 사용하는 다락이 있고, 아래에 아궁이를 설치하여 외관상으로나 구조적으로 완충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사랑채 부분은 한칸 반의 마루와 한칸 반의 온돌방 두 칸으로 구성되고, 바깥마당에 면하여 개방된 퇴칸을 구성하였다. 마루와 전면 퇴칸 사이에는 네짝 들문을 달았고, 두 온돌방 사이는 장지문으로 구획하여 융통성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사랑채 아래쪽으로 2칸의 대문간, 한칸의 온돌방이 있고, 그 아래에는 두칸의 온돌방, 1칸의 부엌, 1칸의 헛간, 3칸의 마루광이 우측으로 연이어 있다. 대문간은 2칸을 할애해 진입동선을 굴절시켜 밖에서 대문을 통해 안마당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이러한 대문간 구성방식은 경기도 지역에서 규모가 큰 가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행랑채 아래쪽 날개부분에서 온돌방 2칸과 부엌 1칸 부분의 보간 거리가 나머지 헛간이나 광 부분 보다 400mm 정도 작게 처리하였는데, 그 연유는 알 수 없다. 사랑채의 가구는 일고주 오량구조이고, 행랑채는 삼량가구이며, 사랑채의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고, 행랑채의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박공지붕이다. 안채의 용마루를 행랑채의 용마루보다 높게 하여 차별을 두고 있다. 바깥채에 사용된 부재 역시 치목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견실하다. 바깥채 기단은 행랑채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장대석 외벌대로 되었고, 방형으로 잘 다듬은 화강석 초석을 놓았는데, 사랑채 부분의 초석이 행랑채 부분에 비해 높이가 높고, 모양도 사다리꼴로 다듬어서 사용하였다.
이 가옥은 안채의 부엌이 입식으로 개조된 것 이외에 별다른 증축이나 개수의 흔적이 없이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부재의 치목 상태나 단면 치수도 매우 견실한 잘 지은 집이다. 현재 사찰로 전용되어 각각의 공간들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 버린 점이 아쉽기는 하나 이로 인해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이어서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하다. 이 가옥은 경기도 지역 상류 주거의 형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 할 수 있는데 바깥마당, 안마당, 뒤란 영역이 횡방향으로 전개되는 경기도 지역 민가의 외부공간 구성 방식의 한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