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유령전첩지(蟹踰嶺戰捷地)는 경기도기념물 제39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부흥로 411이다.
조선 선조(宣祖) 25년(1592) 임진왜란 당시 조선 군대가 왜군과의 지상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곳이다. 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한 달이 채 안 된 5월에 왜군은 도성 한성을 점령하고, 한성 근교인 양주 일대에서 노략질을 하였다.
이 때 부원수(副元帥) 신각(申恪 : ?~1592) 장군과 유도대장(留都大將) 이양원(李陽元 : 1533~1592), 함경병사(咸鏡兵使) 이혼(李渾)이 합동 작전을 펼쳐, 약탈한 식량을 가지고 한성으로 향하는 왜군을 해유령에서 공격해 왜병 70여 명의 목을 베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 곳 해유령은 양주군 백석면 연국리에서 파주군 광탄으로 넘어가는 나지막한 고개길이며, 연곡리 입구는 삼태기처럼 나지막한 구릉이 좌우로 둘러싸여 있다. 이같이 전략적으로 유리한 지세를 이용하여 이곳 연곡리에 들어 온 적을 사방에서 매복 공격한 것이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개전 이후 추풍역전투 다음의 큰 승리였기에, 당시 패하기만 하던 조선 군대의 사기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같은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신각 장군은 처형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앞서 도성 남쪽 한강 방어선에서 왜군을 막지 못한 도원수(都元帥) 김명원(金命元 : 1534~1602)이 패전의 책임을 신각장군에게 뒤집어 씌웠기 때문이다. 뒤늦게 해유령전투에서의 승리를 보고 받은 왕이 형 집행 중지를 명하였으나, 이미 형이 집행되고 난 이후였다.
1977년 4월, 당시 전승을 기념하고 억울하게 죽은 신각 장군의 공을 기리는 해유령전첩비가 해유령 고개 밑 길옆에 건립되었다. 비는 2,000평 대지 위에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10.6m, 둘레 4.8m의 사각기둥탑으로 기단 면적은 132㎡이다.
(자료출처: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경기도, 2005)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문화재안내문안집』
『양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