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장군묘(權慄將軍墓)는 경기도기념물 제2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223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명장인 만취당(晩翠堂) 권율(1537∼1599) 장군의 묘소이다. 권율장군은 선조 15년(1582)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55세 때에는 의주목사로 부임하여 북방 여진족을 방어하였다. 임진왜란(1592∼1598) 중에는 전주에서 군사 만 여명을 지휘하여 독산성에 진을 치고 적이 서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 또한 선조 26년(1593)에는 서울을 회복하고자 행주산성으로 진을 옮겨 군·관·민이 힘을 합하여 3만의 왜군을 물리쳤다. 이것이 임진왜란 3대 대첩(진주대첩, 한산도대첩, 행주대첩) 가운데 하나인 행주대첩이다. 장군이 선조 32년(1599)에 62세로 세상을 떠나자 나라에서는 그의 관직을 영의정으로 높였으며, 선조 37년(1604)에는 선무공신 1등에 영가부원군으로 모셔졌다.
현재 묘역에는 장군의 묘를 중심으로 좌우에 전(前)부인 창녕 조씨와 후(後)부인 죽산 박씨가 안장되어 있다. 묘 앞에는 묘비·상석·향로석·동자석 1쌍이 있으며,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 1쌍을 세웠다. 또한 근래에 마련한 백색 화강암의 정방형 호석도 마련되어있다.
묘역의 입구에 동남향하여 있는 신도비(神道碑 :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는 기존의 신도비 비문이 마모되어 철종 12년(1861)에 장군의 후손들이 새로 세운 것이다. 신도비는 맞배지붕에 풍벽과 홍살을 갖춘 비각 내에 안치되어 있는데, 비좌와 비신, 옥개석을 갖추었으며 비좌는 회백색의 화강암이다. 비신은 오석으로 전체에 비문이 있는데 비 표면의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어려우며, 옥개석은 아무런 무늬가 조식되는 않은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양주시청)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3)』
『양주시』
『문화재 안내문안집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