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걸선생묘(白仁傑先生墓)는 경기도기념물 제58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화합로147번길 296-43이다.
조선중기의 유학자이자 청백리의 한 사람이던 휴암(休庵) 백인걸(1497~1579)선생의 묘이다. 조광조와 김안국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송인수, 이이, 성흔 등 당대의 사림계 인물들과 널리 교유하였다. 중종 3년(1537) 문과에 급제한 뒤 대사간, 대사헌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선조 즉위년(1567)에 양주 목사로 있으면서 고을을 잘 다스려 주민들이 기념비를 세워주었다. 선조 12년(1579)에 조정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당파를 짓는 폐단에 대해 논하고 군비강화를 강조하였다.
묘는 광적면 효촌 2리 효촌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합장묘이다. 경내에는 홍살문과 하마비 및 신도비각 등이 있고, 서편 구릉에는 휴암 선생의 첫 부인의 묘가 동향하여 있다. 묘 앞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놓여 있다. 상석 앞에는 장대석으로 단을 쌓았는데 단 아래에는 동자석, 문인석, 망주석 각 2기가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어 있고 4각의 장명등이 그 중간에 있다. 묘의 규모는 직경 570cm, 높이 170cm이다.
묘소 아래에는 신도비(神道碑 :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는데 묘소로 올라가기 전의 비각 내에 안치되어 있다. 비좌와 비신 및 쌍룡이 운문 속에서 여의주를 앞발로 마주 잡고 다투는 모습이 섬세하게 조각된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좌는 백색 화강암이며, 비신은 전체에 비문이 있는데 글자 뚜렷하다. 전체적으로 넓고 높직한 비좌와 두께에 비해 넓은 비신은 안정감이 있다. 비문은 송시열이 찬하고, 송준길이 썼으며, 김수항이 전액을 썼다. 석등은 모든 부재가 4각으로, 3단을 이루는 받침돌 위에 등불을 켜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과 지붕돌을 올려놓았다. 화사석은 앞뒷면 2곳에만 창을 내었고, 지붕돌은 부도에서와 같이 윗면의 네 모서리선이 두툼하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가지런히 올려 져 있다. 두 작품 모두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세운 것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양주시청)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양주시』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