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安養 中初寺址 幢竿支柱)는 보물 제4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103번길 4이다.
이 당간지주는 원래의 위치에 세워져 있으며 두 지주는 약 85㎝ 가량의 간격을 두고 동서 향으로 마주서 있다. 양 지주는 서로 마주보는 두 지주의 안쪽 면이나 정 반대쪽의 바깥면에도 아무런 장식이 없고 앞과 뒷면에도 역시 별다른 장식은 없다. 양 지주 꼭대기 부분의 바깥쪽을 둥글게 깎아 앞뒷면에서는 꼭대기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어 일반적인 당간지주의 위 부분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양 옆면의 중간부 위쪽 부분부터 살짝 돌출시켜 당간지주가 지니고 있는 윤곽선의 미감을 살려내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꾸밈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에서 간혹 보이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홈은 양 지주의 위, 중간, 아랫부분 등 세군데에 나 있다. 윗 부분의 홈은 지주 안쪽 면 꼭대기에 긴 네모꼴로 파여지고, 중간과 아랫부분희 홈은 둥근 모양으로 지주의 안팎을 꿰뚫고 있는데 이 세 곳에 당간의 고정쇠를 끼우게 되어있다.
지주의 밑 부분에는 바닥을 덮었던 장대석(長大石) 일부가 남아있고, 양 지주 사이의 장대석에는 중심부에 둥글게 홈을 파서 당간을 꽂아 세울 수 있도록 하였으며 둘레로는 둥근 테를 돋우었다. 이처럼 이 지주의 바닥구조는 기단부(基壇部)를 따로 두지 안혹 바닥돌과 당간을 받치는 간대석(竿臺石)이 바로 지면 위에 놓여있어 이 밖에 다른 구성물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같은 기단구조는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초창기에 세워진 당간지주의 기단구조라 할 수 있다.
서평 지주 바깥 면에 여섯 줄로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에는 이 지주가 신라 흥덕왕(興德王) 원년(元年, 826) 8월 6일에 돌을 캐어 그 이듬해인 흥덕왕 2년(827) 2월 30일에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 곳에 있던 당시 사찰의 이름이 ‘중초사(中初寺)’라는 것도 밝히고 있어 이 당간지주는 조성년대(造成年代)가 확실한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라고 할 수 있다.
이 당간지주는 세 군데에 당간을 고정시키는 홈이 나 있는 것과 지주의 꼭대기가 둥글게 깎여진 점, 지주의 바깥 면 중간 부분부터 표면이 돌출된 점 등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제작된 독특한 당간지주의 조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당간지주란 절 입구에 세운 깃대를 지탱하는 한 쌍의 돌기둥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는 커다란 원통형 철통을 수십 겹으로 포개어 육중하고도 매우 높은 깃대를 세웠다. 이러한 깃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는데 특이한 경우에는 돌을 연결한 석당간이나 나무를 이용한 목당간도 만들어졌다. 또한 당간의 양옆에는 당간을 탄탄히 지탱해 주는 육중한 돌기둥이 세워졌는데 이를 당간지주(幢竿支柱)라 부른다.
당간지주는 일정한 형태로 석재를 다듬어 제작되었으며, 한 군데 이상 홈을 파서 당간의 고정쇠를 지주에 끼우도록 되어 있다. 당간의 끝에는 용머리 장식을 하고 여기에 도르레를 달아 사찰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길고 커다란 깃발을 걸었다. 이 때 거는 깃발을 당(幢)‘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처럼 높이 솟은 당간에 깃발을 걸어 멀리서도 보이도록 함으로써 부처님을 위한 사찰의 행사를 더욱 빛나게 하고 승려와 신도, 방문객들도 절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당간이나 깃발을 없어지고 당간지주만 전국 각처의 사찰이나 절터에 남아있을 뿐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대관(보물편·석조2, 개정판)』, 문화재청, 2005)
『문화재대관(보물편·석조2, 개정판)』
『경기문화재대관-국가지정편』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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