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선생묘(李晬先生墓)는 경기도기념물 제54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로 52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숙공 이수(?∼1645)의 묘이다. 왕족의 후손으로 학문이 뛰어났으며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에는 국왕을 모시게 되어 선전관에 임명되었다. 광해군 9년(1617)에 이이첨 등의 죄를 밝히고 윤선도 등을 변호하다가 전라남도 순천에 유배되었으나 인조반정으로 관직에 복귀하게 되었다. 인조 2년(1624)에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국왕을 공주(公州)로 모시고 갔으며, 인조 5년(1627)에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국왕을 강화로 모셨다. 죽은 뒤 정1품 벼슬 등급에만 기록할 수 있는 현록대부(顯錄大夫)에 오르기까지 했다.
묘는 蓬萊君(봉래군) 李炯胤(이형윤)의 묘 바로 아래에 東向(동향)하여 있으며 부인 정씨와의 합장묘인 쌍분이다. 봉분의 하단에는 높이 35㎝, 한면 길이 2m인 장대석을 이용해 둘레 15.6m로 護石(호석)을 8각형태로 둘렀으며, 봉분의 높이는 140㎝이다.
봉분 중앙에는 비좌와 비신 월두형의 묘갈, 혼유석, 상석, 4각 향로석, 좌우에 8각 망주석, 금관조복형의 문인석을 갖추고 있다. 상석은 4각의 석주가 받치고 있다. 망주석은 간주석에 석수가 양각되어 있다. 문인석은 높이 172㎝로 머리부분이 56㎝인 3등신의 신체비율이며, 옷소매가 짧으며 笏(홀)을 마주 잡고 있는 손가락의 표현이 뚜렷하다.
묘갈은 오랜 세월 풍화로 마모가 있으며 특히 비신 하단부로 결락이 있다.
비문은 4면에 있으며, 전면에는 종2열로 ‘昭德大夫兼五衛都摠府都摠管贈顯祿大夫龜川君之墓(소덕대부겸오위도총부도총관증현녹대부구천군지묘) ○○縣夫人贈郡夫人鄭…(○○현부인증군부인정…)’의 비문이 있다. 비문은 金集(김집 : 1574∼1656)이 찬하고, 宋浚吉(송준길 : 1606∼1672)이 썼다.
신도비는 묘역 하단 정희사 우측에 東向(동향)하여 근래에 백색화강암으로 마련한 비좌 및 비신과 8작지붕의 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비신의 비문은 전후 2면에 있으며, 상단에는 전후 2면에 걸쳐 篆書(전서)로 ‘贈謚忠肅龜川君完山李公神道碑銘(증익충숙구천군완산이공신도비명) ’이라 써있다. 비제는 ‘有明朝鮮國行昭德大夫兼五衛都摠府都摠管贈顯祿大夫五衛都摠府都摠管贈謚忠肅龜川君完山李公神道碑銘 幷序(유명조선국행소덕대부겸오위도총부도총관증현록대부오위도총부도총관증익충숙구천군완산이공신도비명 병서)’이다. 비문은 우참찬(右參贊) 이재(李縡 : 1680∼1746)가 찬하고, 10대손 前行副護軍(전행부호군) 李承徽(이승휘)가 쓰고, 9대손 前行知中樞府事(전행지중추부사) 李泰(奉?)鉉(이태(봉?)현)이 전액을 했다. 건립연대는 1897년 10월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성남시청)
『내 고장 성남』
『성남시의 역사와 문화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