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석선생묘(李景奭先生墓)는 경기도기념물 제84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 산16-18번지 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백헌(白軒) 이경석(1595∼1671)의 묘소이다. 인조 1년(1623)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이괄의 난 때에는 승문원 제조로 인조를 공주(公州)로 모셨고, 병자호란 때에는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모시기도 하였다. 인조 16년(1638)에는 대제학에 오르고 효종 즉위년(1649)에 영의정에 올랐다. 인조∼현종 3대 50여 년에 걸쳐 난국을 적절히 헤쳐나가는데 공헌한 훌륭한 재상이었다.
그의 묘는 부인 전주유씨와의 합장묘로 원형의 단독분은 용미와 활개를 갖추고 있다. 묘역에는 묘표, 망주석, 문인석 등의 옛 석물과 봉분 중앙에 혼유석, 상석, 계체석 4각과 6각의 향로석 2기, 장명등 및 봉분 우측에 상석, 4각 향로석 등 다수의 석물이 있다. 망주석은 8각으로 극히 화려하며 석수 조각이 양각되어 있다. 좌측의 망주석은 석수가 오르고 있는 모습이며, 우측의 망주석은 석수가 내려가고 있는 모습이다. 문인석은 금관조복형이다.
묘표는 봉분의 좌측(동쪽)에 위치하여 서쪽으로 봉분을 향하고 있다. 비좌는 4면에 당초문이 있으며, 상부에 전후 5엽, 좌우 1엽의 화려한 단판복련문이 조식되어 있다. 비신은 백색대리석제로 예서체의 비문은 4면에 있으며, 전면에 종3열로 ‘有明朝鮮國領議政文忠公白軒李先生景奭墓(유명조선국영의정문충공백헌이선생경석묘) 貞敬夫人全州柳氏祔左(정경부인전주유씨부좌)’의 비문이 있다. 비문은 현손인 광회가 찬하고 광사가 썼으며, 건립연대는 崇禎甲申後再辛未(숭정갑신후재신미) 이다.
신도비는 묘역 입구에 신·구비 2기가 나란히 동향하여 세워져 있다. 원래의 비는 비좌와 비신 및 8작지붕 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비좌는 4면에 당초문과 상부에 전후 5엽, 좌우 1엽씩의 대형 단판복련문이 조식되어 있다. 비신은 표면이 심한 결락과 마모로 비문을 알아볼 수 없다. 원래의 비문은 박세당(1629∼1703)이 찬하고, 이광사(1705∼1777)가 쓰고 전액을 하여 1754년(영조 30)에 건립되었다.
신비는 구비와 140㎝의 거리를 두고 같은 형태로 백색화강암의 비좌와 오석의 비신 및 8작지붕 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비좌는 4면에 당초문과 상부에 전후 4엽, 좌우 1엽씩의 대형 단판복련문이 조식되어 있다. 비신은 4면에 비문이 있으며 상부에 전서로 4면에 걸쳐 ‘領議政謚文忠公神道碑銘(영의정익문충공신도비명)’이라 하였고, 비제는 ‘有明朝鮮國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贈謚文忠公李公神道碑銘 幷序(유명조선국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겸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세자사증익문충공이공신도비명 병서) ’이다. 비문은 숭정대부행이조판서겸지경연홍문관제학 박세당(1629∼1703)이 찬하고, 현손(1705∼1777)이 글을 쓰고 새겼으나 마모가 심하여 후손들이 1975년에 새로 건립하였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성남시청)
『내 고장 성남』
『문화재안내문안집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