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일원(南楊州 雲吉山 水鍾寺 一圓)은 명승 제109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1060일대이다.
수종사에 대한 유래는, 1458년(세조 4) 세조가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다녀오다 이수두(二水頭 : 兩水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에 잠을 깬 왕이 부근을 조사하자, 주변에 바위굴이 있고, 굴 안에 18나한(羅漢)이 있었으며, 굴 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나와 이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하였다고 전해온다.
운길산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양수리)를 바라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 전망지점으로 자연경관 가치가 높은 곳이다. 예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의 풍광을 시·서·화로 남겼으며, 서거정(1420~1488)은 수종사를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하였으며, 봄·여름·가을·겨울 연중 내내 신록·단풍·설경이 신비스러우며, 일출·일몰·운해 등 어느 시간의 풍광이라도 대단히 아름다운 전망을 지니고 있는 조망지점으로서 경관가치가 큰 곳이다.
정약용은 일생을 통해 수종사에서 지낸 즐거움을 ‘군자유삼락’에 비교할 만큼 좋아 했던 곳으로 역사문화 가치가 높은 곳이며, 또한 다선(茶仙)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가 정약용을 찾아와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차를 마신 장소로서, 차문화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며, 현재 수종사는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다실을 지어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 이름이 높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경교명승첩(한강의 북한강·남한강 주변경관과 한강과 서울의 인왕산, 북악산 등의 경관을 그린 화첩으로 총 33점으로 이뤄짐)중 독백탄(獨栢灘)은 현재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의 경관을 보여주는 고서화로서 그 시대의 명승지 경관과 현재의 경관을 비교 감상할 수 있어 회화 가치가 높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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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내용 출처 : 경기문화포털
세조임금이 들은 종소리
수종사는 한강변 운길산 중턱에 자리를 잡아서 한강을 내려다보는 경관이 아주 빼어난 사찰이며 조선조 세조 임금과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세조의 행렬이 도착한 것은 해거름 때였다. 오대산을 다녀오는 임금의 행차가 한양 대궐까지의 백리 길을 앞두고 하루 저녁 묵어갈 행궁을 마련한 곳은 양수리였다. 세조는 전국 명산대찰을 즐겨 찾았다. 조선조 치국(治國)의 이념이 유가(儒家)의 가르침이었을지라도 세조는 큰 절을 찾아 경치를 즐기고 부처에게 예를 올리기를 즐겼다. 임금의 행렬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으되 위엄이 당당했고 행궁 주위에서는 찬바람이 이는 듯했다. 세조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한곳으로 모여드는 이곳의 아름다운 붉은 노을과 강가 풍 경을 조망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임금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에 청아한 종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좋은 종소리로다. 이 근처에 큰 절이 있음이야. 그런데 어찌하여 대신들은 절이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을꼬…”
임금은 종소리가 강 건너 산중허리에서 들려온다는 걸 알았고 그 청아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감상하며 잠이 들었다.
“이 근처에 큰 절이 있는 듯한데 어떤 절이더냐?”
신하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전하, 이곳 인근에 종소리가 들릴만한 절은 없사옵고 지난밤에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나이다.”
“내가 헛것을 들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이는 분명 부처님이 어떤 계시를 내리심이로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다다른 임금은 바로 신하들에게 강 건너 산을 조사하도록 했다.
한 나절 만에 돌아 온 군사들과 대신들은 기다리고 있던 왕에게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그 산은 운길산이고 산 정상 가까이에서 그리 깊지 않은 암굴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암굴 앞은 절터의 흔적이 완연하나 폐허가 되어 이렇다 할 유물이 없는데 다만 암굴에 열여덟 분의 나한님들이 가지런히 조성되어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신하들이 군사를 데리고 암굴 앞에 이르니 18나한상 앞쪽의 암굴 천정에서 물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는데 그 소리가 큰절에서 듣는 아름다운 범종소리와 흡사하다는 보고였다.
“바로 그곳이다. 그 소리가 내 귀에만 들렸음이니 분명 나한님들의 조화라 할 것이다. 내 그곳에 참배하지 않을 수 없으니 길을 잡도록 하라.”
암굴에 도착한 세조는 나한들을 보고 경탄의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신묘한 조화로 자신을 이곳까지 오게 한 그 신력에 감복하며 경건 하게 절을 올렸다. 참배를 마치고 암굴 앞에 서서 산 아래를 둘러본 임금은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앞에 펼쳐진 정경이 가히 조선제일의 풍광이었다. 남한강과 북한강 이 만나는 저 아래의 양수리는 조물주가 그려놓은 한 폭의 커다란 그림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절터이나 지난날 절이 피폐하여 나한님들이 당(堂)을 잃고 암굴에 드신 것이 안타깝도다. 아마 짐의 귀에 들린 종소리는 절을 다시 일으켜 세우라는 나한님들의 계시가 분명하다. 팔도방백들은 속히 의논하여 이곳에 절을 지으라. 그리고 절 이름은 물방울 소리가 종소리로 울려 퍼진 뜻을 새겨 수종사(水鍾寺)라 함이 좋은 듯하다. 절 이름에는 나한님의 신묘한 신통력이 담겼음을 알고 속히 불사를 진행하도록 하라.”
세조는 한나절을 암굴 앞에 서서 산세와 양수리의 풍광을 즐기다가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고 궁궐로 돌아갔다고 한다.
『(지도로 보는) 아름다운 경기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