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확선생신도비(韓確先生神道碑)는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 546이다.
한확(1403~1456)은 조선 초기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 자(子)는 자유(子柔)이며, 호(號)는 간이재(簡易齎), 시호는 양절(襄節)이다. 그는 인수대비의 아버지로, 성종의 외할아버지가 되며, 그의 누이는 명나라 성조의 비, 누이동생은 명나라 선종의 후궁이다. 누이가 명나라 성조(城祖)의 후궁이 되어 명에 가서 벼슬을 하는 동안 수차례 모국과 왕래하면서 국교(國交)를 원활히 하였다. 누이가 명나라 성조의 비로 뽑히자 1417년(태종 17)진헌부사로 명나라에 가서 광록시소경(光祿侍少卿)을 제수 받았다. 이듬해 세종이 즉위하자 명의 책봉정사(冊封正使)가 되어 귀국하였고, 1435년(제종 17)에 중추원부사가 되었다.
1453년 계유정란 때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고 서성부원군(西城府院君)에 봉하여 졌다. 1455년(세조 1) 좌의정이 되고, 좌익공신 1등에 오르고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개봉되었다. 1456년 사은사 겸 주청사로 명나라에 가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양위라고 명나라를 설득하였고, 귀국하는 길에 사하포(沙何浦)에서 숨졌으며 세조묘(世祖廟:종묘에 안치된 세조의 위패)에 배향되었다.
신도비는 장방형의 비좌(碑座) 위에 대리석으로 된 비신(碑身)과 이수를 올려놓은 형태로 매우 크게 조성되어 있다. 비좌는 이중의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올려놓았는데 상부에는 복판연화문(覆辦漣花文)을 새겼다, 아랫부분은 2층으로 나누어 각각 안상 문양을 새겼다. 쌍룡을 조각한 이수는 그 문양이 매우 섬세하며, 쌍룡을 중심으로 주위에 운문(雲文, 구름모양)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 의하면 한확의 막내딸로 덕종(德宗)의 비가 된 인수대비(仁粹大妃, 1437~1504)가 부친의 묘에 비가 없음을 슬퍼하자 성종(成宗) 25년 4월 왕이 우참찬(右參贊) 어세겸(魚世謙, 1430~1500)에게 명해 비문을 짓게 하고 한확의 셋째 아들 한치례(韓致禮, 1441~1499)에게 비의 건립을 맡게 하여 이듬해 1495년(연산군 1)에 세웠다. 글씨는 성종의 사돈 임사홍(任士洪, 1445~1506)이 썼는데 부드러운 송설체이다. 비문에는 그의 누이가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이 된 뒤 수차 왕래하며 국교를 원활히 했던 그의 행력이 기술되었고, 이어 한치례, 인수대비 및 예종(睿宗)의 비가 된 둘째 딸 등 3남 6녀의 자녀와 인수대비 소생인 성종, 월산대군(月山大君, 1454~1489), 명숙공주(明淑公主)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음(碑陰)에는 번성했던 후손들의 명단이 앞면보다 큰 글씨로 새겨져 있다.
(자료출처 : 남양주시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1』)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남양주문화재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