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현선생묘(李孟賢先生墓)는 경기도기념물 제114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로223번길 37-57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 이맹현(1436∼1487)의 묘지이다. 이맹현의 자는 사성(師聖), 호는 근재(覲齋), 호조참판 개지(介智)의 아들이며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1456년(세조 2)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재생으로 있을 때부터 경학(經學)에 명성이 높았다. 1460년 7월에는 춘당대시(春塘臺試)에 장원 급제하고 성균관주부가 되었다. 세조 10년에는 『동국통감(東國通鑑)』편수와 『경국대전(經國大典)』 형전(刑典) 편찬에도 참여하면서 왕족들의 교육기관인 종학(宗學)의 도선(導善, 교사)을 겸직하기도 하였다. 그 뒤 사헌부장령, 이조정랑, 예문관응교 등을 지내면서 경연시독관·시강관 등을 겸하였다. 1475년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백성을 위해 경회루 중수 논의에 반대하였으며 경상도재상경차관(慶尙道災傷敬差官)이 되어 여러 읍의 토지대장을 살펴보고 시정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1477년 형조좌랑 직제학을 거쳐 예조참의가 되어 통정대부(정3품)가 되고 홍문관부제학에 올랐다. 후에 황해도관찰사가 되어서는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으며, 이후 나주목사를 지냈다. 문장에도 능하고 덕망이 높아 세조의 신임을 받았으며 유시(遺詩) 4수가 전한다.
봉분은 부인 파평윤씨(坡平尹氏)와 쌍분이다. 쌍분 앞에는 각각 묘비, 상석, 향로석을 배치하고, 묘역 좌우에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옛 것 2기와 새 것 1기로 모두 3기가 있는데 좌우 옛 묘비의 비문은 허침(許琛, 1444~1505)이 찬(撰)하여 성종 19년(1488)에 건립하였다. 쌍분의 중앙에 있는 오석제(烏石制) 새 묘비는 1956년 종중(宗中)에서 묘역을 정비할 때 원래의 비문 내용을 그대로 옮겨 써서 건립하였고, 위의 상석과 향로석도 새로이 교체한 것이다.
(자료출처 : 남양주시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남양주시의 역사와 문화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