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수안산성(金浦守安山城)는 경기도기념물 제159로 소재지는 경기 김포시 대곶면 율생리 산117번지 일대이다.
김포시 대곶면의 수안산 정상부에 위치한 테뫼식(산봉우리를 둘러쌓아 성을 축조한 것) 석축산성이다. ‘수안산(燧安山)’이라는 명칭은 정상부에 조선시대의 봉화대(봉수대烽燧臺)가 있어 이름 붙여진 것으로, 수안산성(守安山城)을 수안산성(燧安山城)이라고도 쓴다.
지리적으로 볼 때 강화도와 마주 보며 바다를 향한 남서쪽에 건물터가 모여 있고, 서로 왕래가 가능한 포구가 성 바로 아래에 있는 전략적인 장소이다. 성 안에는 수안산 봉수터가 있는데 남쪽으로는 김포 백석산 봉수에 응하고 서남쪽은 바다 건너 강화 대모산 봉수에 응하였다는 옛 기록이 있다. 이처럼 수안산성은 봉수터로서의 기능도 함께 가진 성으로 강화도와 육지를 연결시켜 주며 조선시대까지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산성의 둘레는 578.5m로, 성벽은 남벽 일부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잔존 성벽의 규모는 높이 2.2m(10단)로 원 성벽의 높이는 3m이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 안의 편평한 터가 있는 서남쪽에서는 건물터로 여겨지는 곳이 4곳이 남아있는데, 그 주변에는 많은 기와 조각이 널려 있다. 그 외에 문터가 서쪽에서 발견된 것을 비롯하여,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은 치(雉)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성내에서 우물 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약수터가 있고, 수안산에 발원하는 하천이 3개나 되는 만큼 물의 확보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삼국 시대의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토기 조각은 단각고배류, 인화문토기 합, 완, 등이 주류를 이루며, 단경호와 시루 등도 발견된다. 기와는 격자문, 어골문, 선문, 복합문의 순으로 수습되는데 대체로 신라∼통일신라 시대의 유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재 발견되는 유물이나 쌓는 방법으로 보아 이 성은 신라 진흥왕 대 한강 하류지역을 장악하고 쌓은 성이라고 판단되며, 통일신라 시대까지 서해안 지역을 방어하는 중요한 성으로 기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경기문화포털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성곽길라잡이1』
『김포시의 역사와 문화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