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묘(許蘭雪軒墓)는 경기도기념물 제90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지월리 산29-5번지이다.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허난설현(許蘭雪軒)의 묘이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로 용모가 아름답고 성품이 뛰어났으며, 8살 때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어서 신동으로 일컬어졌다. 15세에 김성립과 결혼하였는데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하였으며, 친정집에 옥사(獄事)가 있는 등 연속되는 불운에서 오는 고뇌를 시를 쓰며 달래다가 선조 22년(1589) 27세에 생을 마쳤다. 그녀는 섬세한 필치로 여성 특유의 감상을 노래하여 애상적인 독특한 시세계를 이룩하였다. 작품의 일부는 허균에 의해 중국에 전해져『난설헌집』으로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다.
허난설헌의 묘는 현재의 위치에서 약 500m 우측에 있었으나 중부고속도로 개설로 1985년 현 위치로 이전되었다. 문인석을 제외한 묘비·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상석·망주석·둘레석은 근래에 만들어졌다. 묘비의 비문은 이숭녕이 지은 것이며, 묘의 우측에는 1985년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에서 세운 시비(詩碑)가 서있다. 시비에는 허난설헌의 곡자시(哭子詩)가 새겨져 있으며 시의 대상인 두 자녀의 무덤이 난설헌묘 좌측 전면에 나란히 있다.
곡자시(哭子詩) -허난설헌-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지난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을 잃다니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廣陵)땅이여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鬼大明松楸(귀대명송추) 도깨비 불 무덤에 어리 비치네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알고 말고 너희 넋이야
玄玄酒尊汝丘(현현주존여구) 무덤에 냉수를 부어 놓으니
應知弟兄魂(응지제형혼) 알고 말고 너희 넋이야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밤마다 서로 서로 얼려 놀테지
縱有腹中孩(종유복중해)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 한들
安可期長成(안가기장성) 이 또한 잘 자라기를 바라겠는가
浪吟黃臺詞(랑음황대사) 부질없이 황대사(黃臺詞) 읊조리면서
血位悲呑聲(혈위비탄성)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광주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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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내용 출처 : 광주시청 / 광주문화원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자(字)는 경번(景樊), 호(號)는 난설헌(蘭雪軒), 본관(本貫)은 양천(陽川)이다. 용모가 아름답고 똑똑하여 어깨너머로 배운 글로 8세 때 지은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이 알려져 여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1577년 안동(安東) 김씨(金氏)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하였으나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한 규원과 친정이 역옥(役獄)에 연류되는 겹친 화액(禍厄)에서 오는 고뇌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로 여성 특유의 감상을 노래하여 애상적(哀想的)인 시풍(詩風)의 독특한 시 세계를 이룩하였다. 그의 작품일부를 동생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게 되자 중국에서 난설헌집(蘭雪軒集)이라는 시집(詩集)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으며 1711년경 일본에서도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애송(愛訟)되었다. 서포 김만중(金萬重)은 해동규수(海東窺秀)중에 오직 난설헌만이 있을 뿐이라는 찬사를 글로 남겼으며 서애 유성룡(柳成龍)은 난설헌집 발문(跋文)에서 ‘사물을 느끼고 회포를 일으키며 시절을 걱정하고 세속을 근심함은 열사의 풍이 있으며 속된 냄새라고는 풍기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한시(漢詩)에도 능했던 그녀는 『난설헌집(蘭雪軒集)』을 남겼으며, 선조(宣祖) 22년(1589) 3월 19일 27세로 요절(夭折)하였다.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광주군지』
『허난설헌-허난설현 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