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사(長慶寺)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소재지는 경기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로 676이다.
장경사는 남한산성 안에 있는 사찰로 남한산성을 지을 당시인 조선 인조 16년(1638)에 세웠다. 전국8도의 승려들을 모집하여 산성 짓는 것을 도왔는데, 이때 승군(僧軍)들이 훈련을 받으며 머무르던 9개의 절 중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절이다.
이 사찰은 망월봉의 남사면 중턱 곡저부의 완경사면을 이용하여 비교적 넓은 대지를 구축하였다. 『남한지』에는 절 뒤에 철쭉이 많고 노송 숲에서는 송이버섯이 나며, 진남루 남쪽에는 망대가 있어 올라가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그윽한 경치가 절중에서는 으뜸이라고 하였다.
『광주군지』에는 장경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옛날 검단선사라는 도인이 한 소년의 모친 병을 치료해주기 위하여 도술을 써서 묘향산에 들어가 약재를 구해 가지고 소년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와서 기다렸으나 끝내 그 소년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소년은 모친이 죽자 크게 상심한 나머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뒷날 검단선사가 그 자리에 절을 세웠고 그것이 장경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찰은 인조2년(1624) 남한산성 수축시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위해 건립한 군막사찰이다. 병자호란 당시인 인조 15년(1637) 1월 19일 적이 동쪽 성을 침범하여 성이 함몰위기에 빠지자, 어영별장 이기축이 장경사에 있다가 죽을힘을 다하여 몸소 군사를 독전하였다. 적이 물러가자 왕이 친히 납시어 위로하고, 가선의 품계를 더하였으며, 완개군에 봉하였다고 한다. 1907년 8월 1일 일제의 군대 해산령에 의해, 성안의 무기고와 화약고를 파괴할 때 다른 사찰은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그중 장경사가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 그러나 1975년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중창하였다.
사찰내의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진남루, 칠성각, 대방, 요사채 등이 있는데, 그 중 대웅전이 가장 화려하게 지어진 고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은 겹처마를 두른 팔작지붕이며, 다포양식의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측면의 칸은 정면의 칸보다 약간 좁아서 건물의 전체 평면은 장방형을 이룬다. 건물의 정면에는 각 칸마다 4쪽 여닫이 교자문을 달았다. 종무소는 홑처마를 두른 맞배지붕 양식에 주심포식 4각 모기둥을 썼다. 이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되어 있는데 앞으로는 짧은 툇마루를 내었으며 2쪽 여닫이 자문을 달았다.
현재 장경사는 산성 내에서 유일하게 옛 모습으로 남아 있는 사찰로 조선시대 승병들이 나라를 위해 활동한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남한산성은 2014년 6월 22일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1번째이며, 경기도에서는 수원 화성에 이어 두 번째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광주문화원)
『경기문화재대관-도지정편』
『(지도로 보는)아름다운 경기건축』
『경기도불적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