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관악사지(果川冠岳寺址)는 경기도기념물 제190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산12-1, 산12-9번지이다.
관악사 창건에 관해 연주암지에 ‘신라 문무왕 17년 의상조사가 의상대를 창건하는 동시에 관악사를 개산하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태종 11년(1411)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충령대군에게 세자 자리를 물려준 후 관악산에 올라 마음을 달랬다고 하는데, 효령대군은 이곳에서 2년간 수양을 하며, 관악사를 예전에 있던 터로부터 현 위치로 옮겨 지으면서 40칸의 가람을 건설하였다. 1999년 과천시가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연구소에 의뢰하여 발굴조사를 한 결과 도자기편, 기와편 등 출토유물이 15세기전반부터 18세기까지 나오고 있어 효령대군이 이전 조성한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사지의 조사 결과 원래의 사찰은 급경사 지역에 석축을 쌓아 대지를 조성한 후 가람이 조영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총 10동의 건물지와 온돌, 배수, 담장시설 등이 조사되어 전성기에는 상당한 규모의 가람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찰은 건물지 최하 부층에서 초창 당시의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15세기경으로 편년되는 분청사기편이 출토되고 있어 늦어도 조선 초기에는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17세기경에 일부 건물이 중창되었으나 다시 18세기경에 폐사되어 사찰의 기능을 상실하였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대략적인 가람 배치는 북쪽에 주요 법당이 위치하고, 남쪽에 온돌 시설이 있는 건물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요사 등 보조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지에서는 기와편, 자기편, 청동제품, 토기편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어 사찰의 위상이 하였음을 알려주었다. 기와편은 치미, 용두, 막새기와 등 많은 양의 평기와가 출토되었다. 이중에서 봉황문, 용문 등이 시문된 조선시대 막새기와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이 사찰이 왕실과 깊은 관계에 있었음을 시사해 주었다. 자기편은 분청사기와 백자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 들은 15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묵서된 명문이 있는 자기편도 출토되어 주목되었다. 이외에도 석불편과 연화문이 장식된 납석제편이 출토되었다. 석불은 파손이 심하여 구체적인 형상은 알 수 없지만 선정인의 수인을 취한 것으로 보이며, 전체적으로 조잡한 조각 수법을 보인다. 특히 묵서된 청동제 금고(金鼓)가 출토되었는데, 명문의 내용 중에 원각사(圓覺寺)라는 사찰 이름이 나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금고는 이동이 용이하고 다른 사찰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 사지에서 사찰 이름을 알려줄만한 다른 명문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원각사로 단정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토기편은 소량이 출토되었는데 호형류(壺形類)가 많았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과천시청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2』)
『(지도로 보는)아름다운 경기건축』
『과천시의 역사와 문화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