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MEDIA OBJECT
문화유산
지정구분 | 도등록유산 |
---|---|
종목/번호 | 도등록문화유산 |
명칭(한자) | 韓國戰爭 避難民 太極旗 |
유형 | 유물 / 생활공예 / 근대공예 |
지정일 | 2021-10-27 |
소재지 | 경기도 동두천시 평화로2910번길 96-63(상봉암동), 자유수호평화박물관 |
시대 | 한국전쟁기 |
동두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는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미 해군에게 구조된 피난민의 것을 습득·보관하다, 1987년 기증 받은 것이다. 현재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거나 등록된 태극기는 총 21건으로, 본 문화유산은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 기증 태극기와 함께 한국전쟁 당시의 역사적 비극과 미 해군의 활동을 입체적으로 조명해 보게 한다.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는 면직물 두 장을 손바느질로 연결한 바탕천 위에 연필로 정교하게 밑그림을 그린 후 검정색으로 태극과 괘를 그려 넣어 완성했다.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비율과 괘의 위치 등은 천안 독립기념관 소장의 태극기 목판과 유사하지만 크기나 색채 등의 특징점이 있다. 현재 붉은색은 거의 빠졌고 푸른색은 처음부터 검정으로 칠해졌다. 괘 부분과 동일한 검정이 사용되었는데 시각적으로 달라 보이는 점은 이 태극기가 일장기를 바탕으로 해서 제작되어 붉은 바탕 위에 덧바르거나 흰 바탕 위에 덧바른 데서 온 결과로 보인다.
1951년 9월 함경남도 함흥의 흥남항에서 피난민을 태우고 탈출하던 배를 미 해군 함정 모킹버드(USS Mockingbird)호가 발견했다. 모킹버드호에서 근무하고 있던 휘트만 소위와 미군 장병들이 이들 피난민을 구조하였다. 모킹버드호는 1943년 9월 제작된 후 1944년 11월부터 태평양 지역 작전에 투입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일본과 한반도 주변에서 활동하였으며,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전쟁에 투입되어 인천상륙작전에도 참여하였다. 1951년 봄부터는 동해안과 서해안을 옮겨가며 구호물자를 나르고, 원산·흥남·성진 등지의 해안을 순찰하였는데, 이때 피난민의 배를 구조한 것이다.
당시 피난민이 유실한 태극기를 조지 휘트만 소위가 습득하여 미국으로 가져가 보관하고 있었다. 그와 그의 아들인 존 휘트만 미 육군중령은 동두천 주둔 미군부대(Camp Hovey)에 근무 중인 1987년 8월 31일 부대 앞의 동두천 광암동사무소에 이 태극기를 기증하였다. 이후 광암동사무소에서 태극기를 보관해오다가 2002년 5월 20일 동두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이 개관함에 따라 박물관으로 옮겨 보관·전시되고 있다.
[자료출처]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
경기문화재단(이하 ‘재단’)은 정보주체의 자유과 권리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경기문화재단의 개인정보처리방침은 지지씨멤버스(members.ggcf.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