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 능곡동 유적은 시흥시 능곡동 일원에 택지개발사업지구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현재는 공동주택이 들어서 있다.
유적은 북쪽으로 서해안과 접하고 남쪽으로 군자봉의 소분지 구릉에 위치하는데 39호 국도와 397호 지방도가 만나는 교통상의 요지에 해당한다. 신석기시대 주거지 24기를 포함하여 청동기시대 주거지 7기 · 수혈 2기, 삼국~통일신라시대 석실묘 6기,묘, 조선시대 이후 기와가마, 구들, 묘 등 모두 155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신석기시대 주거지는 해발 33m 능선 정상부와 남쪽의 완만한 경사면 상단에 동-서로 길게 조성되어 있다. 배치 양상은 한 변의 길이가 450~500cm 내외인 큰 주거지들은 7~15m의 간격을 두고 정상부에 분포하는데 비해 450cm 미만이 것은 사면에 분포한다. 주거지간의 중복은 없고 평면형태는 모두 방형으로 한 변의 길이가 250~500cm 내외이다. 주거지 내부시설로는 중앙에 원형, 타원형 방형의 수혈식 노지 1기, 네 모서리에 기둥구명, 구와 저장구덩이가 있으며 출입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 첨저 심발형토기, 말각평저 발형토기, 갈돌과 갈판, 고석, 망치돌, 화살촉, 굴지구, 지석, 대석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토기의 특징은 저부에 문양이 확인되지 않는 점, 구분문계와 동일문계 횡주어골문, 구연한정 시문토기가 동반된다는 점이다. 구분문계 토기는 구연부에 단사선문, 점열문, 조문 등의 문양이, 동체부에는 횡주어골문이나 집선문, 파상문 등이 시문되었고, 동일문계 토기는 구연부에서 동체부까지 다치구에 의한 횡주어골문이 대부분 시문되었으나 거치문이 시문된 것도 있다. 중서부 지역 빗살무늬토기의 전형적인 양상인 첨저에 직립 구연부를 가진 기형이 대부분이나, 평저토기도 일부 확인되고 있다. 토기의 문양구성이나 노지의 형태를 근거로 할 때 신석기시대 중기로 편년할 수 있는데 이는 탄소연대측정 절대연대와도 일치한다.
청동기시 주거지는 구릉 정상부의 신석기시대 주거지 일부를 파괴하고 조성되었으며 평면형태는 대부분 장방형이나 세장방형과 방형도 있다, 유물은 구순각목문공렬토기, 각목문토기, 공렬토기와 각종 석기 출토되었다. 주거지의 형태와 입지 출토유물로 볼 때 역삼동식로 분류할 있으며 그 시기는 청동기시대 중기에 속하는 7호외에 모두 청동기시대 전기로 추정된다.
삼국~통일신라시대 석실묘는 6기중 1호~3호 5세기 중엽 백제 횡혈식석실묘, 4호~6호는 통일신라 횡구식석실묘이다. 백제석실묘가 한강수계를 벗어난 서해안 지역에서 확인되고 구조와 출토유물 양식이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은 5세기대 이 일대가 백제의 중앙세력에 편입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의의가 있다.
신석기시대 주거지 14기와 청동기시대 주거지 3기는 유구 경화 및 충전 복토 작업을 실시한 후 현지에 원형보존하였고, 터널공사 지점에 포함된 10기는 공사후 원형재현, 주거지터 재현 등 교육 및 연구자료로 활용하기 위하여 유적공원으로 조성하여 보존되고 있다.
[참고문헌]
경기문화재연구원·한국토지주택공사, 2010, 『시흥 능곡동유적』